이토(이등박문)를 죽였다 하여 천주교 평신도 자격을 박탈당한 안중근 의사가 그의 생일인 지난 21일 세례명 토머스를 되찾고 신도로서 복권되었다.
살인자는 신도가 될 수 없다 하여 당시 뮈텔 주교에 의해 신도자격을 박탈당한지 84년만의 일이다.
동학혁명의 여파가 황해도까지 미치자 안의사 일가는 고향의 천주교회에 피신, 석달동안 그 성당에 머물렀었다. 당시 그 성당에는 프랑스 사람 조셉 윌헬름- 한국이름 홍석구(홍석구) 신부가 있었으며 그 동안에 일가 모두가 홍신부에게 교화를 받아 세례를 받고 있다. 당시 19세의 안의사 세례명은 다묵(토머스)이었다. 안의사의 옥중기인 <안응칠력사>에 홍신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천주교회의 홍신부가 나에게 영생영락(영생영락)의 성사를 전수하기 위해 멀리 조선에서 이곳 (려순) 감옥까지 와 주셨다. 나는 홍신부를 보았을 때 꿈에서처럼 마치 취한사람마냥 기쁨과 즐거움이 솟구쳐 그치질 않았다. 원래 홍신부는 프랑스 사람으로 파리 동양전도교회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동정을 지켜 성직을 택해 신부가 되신 분이다. 신부는 재예(재예)에도 뛰어나고 박학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영어 프랑스말 독일말과 라틴어에도 숙달해 있었다. 1890년 조선땅에 와 한양과 인천에서 전도하다 1895~1896년경 황해도에 와서 전도하고 있는 동안 나를 주님 가까이 이끌어 세례를 베풀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 이 이국 땅에서 다시 뵙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신부 나이는 이미 53세가 되셨다. 세례후 안의사는 교회의 도움으로 과학과 프랑스말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울 뜻을 갖고 홍신부와 더불어 상경, 뮈텔주교(주교)를 만나고 있다. 학문을 하면 믿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교개설에 반대, 안의사의 꿈은 무산되고만다. 홍신부가 멀리 여순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안의사를 면회한 것은 3월 8일의 일이었다. 그 전해 12월 7일 안의사는 면회하러온 두 아우에게 천주교 신부에게 성사를 받고싶다고 말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홍신부는 교리에 의한 설교를 하고 9일에는 안의사로부터 고해를 들었으며 10일에는 안의사에게 성체수여식을 베풀고 11일 여순을 떠나고 있다. 뮈텔주교는 홍신부가 여순에 가서 안의사를 만나는 것마저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사형 집행일인 3월 26일 오전 9시 두아우에게 천당에 가서 독립만세를 부르겠다고 유언하고 10시 교수대의 대상에 오른 안의사는 3분동안 신에게 기도하고 있다. 감옥묘지에 매장될때 그의 영구 양편에는 그리스도상이 얹혀있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안의 사의 신도로서의 복권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유해를 못찾아 방황하고 있을 춥디추운 영혼에 신앙의 이불을 깔아드리는 것같아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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