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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송청傳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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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당나라 학자 유종원의 글에 장안에서 약국을 하는 송청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좋은 약재를 비싸게 사주고 환대를 하기에 산간지방 채약업자들이 장안에 오면 바로 송청의 약방을 찾게 돼있었고 좋은 약이 많기에 장안의 의원들 또한 송청의 약방을 찾게 돼있었다. 송청이 짓는 약이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 환자 또한 모여들면 신분의 귀천이나 재산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성의를 다했으며 약값을 못낸 사람들로부터 받은 차용증서가 산더미 처럼 쌓이곤 했다. 전혀 면식이 없을 뿐더러 신원을 알지 못해도 증서를 받고 약을 주었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어 그 약값 빚을 갚지 않으면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차용증서를 마치 낙엽 태우듯 불사르고 미련을 버린다.
 
자고로 병환이란 촌음을 다투는 사항이기에 약방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공포와 불안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를 미끼로 옛날 장안에서도 약방의 끗발이 세었던지 관에서 간섭이 심하거나 세금을 많이 물리거나 벼슬아치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거나 하면 약방문을 닫음으로써 저항하곤 했던 것 같다. 한데 송청만은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약으로 장삿속을 연계시킬 수 없다 하여 약방문을 닫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범인을 초월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도 받았다.
 
이 평판에 대해 송청은 자신은 어리석지도 또 훌륭하지도 않은 그저 약을 팔아 처자식 먹여살리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며 다만 다르다는 것이 있다면 이익을 남들보다 늦게 챙기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내가 약방을 시작하여 40년동안 차용증을 태운 것이 수백통에 이른다. 당장 약값을 못냈던 그 사람들 가운데는 후에 대관이 되어 관찰사며 어사며 정승이 된 사람이 적지 않았고 또 모든 약방이 문을 닫았을때 내 약으로 죽을 목숨을 건진 사람 가운데도 고관대작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들이 후한 선물로 옛 은혜 갚기를 끊이질 않는다. 물론 빚지고 죽은 사람도 수백명에 이르나 결국 손익을 타산해 보면 많이 남는 장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은혜란 나의 당대로 끝나지 않고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지는 것인지라 양전을 남기는 것이 되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유종원은 "지금 조정이나 관청에 몸을 두거나 장사나 학문이나 예술을 한다는 사람의 대부분이 목전의 이익만을 보고 추구하는데 멀리 바라보는 송청의 눈발치가 너무나 절실하여 적어 남긴다"고 했다.
전국적인 약국 휴업 상태가 위기일발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보니 이 송청 이야기가 생각나 이렇게 적어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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