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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가배다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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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조선조 초의 학자 성석인은 집안에 위생당이라는 다정(茶亭)을 지어놓고 차를 달여 마시는 것으로 여생의 낙을 삼았다.

 

그 다정의 단골손님으로 고려말의 학자 이행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항상 소를 타고 내왕했기에 기우자라 불렸다. 언젠가 기우자가 와서 다동으로 하여금 차를 끓여드리게 했는데 차맛을 보더니 "이 차에 두번 물을 부어 끓였구나"하는 것이었다. 실은 다동이 차를 끓이면서 찻물을 흘려 다시 물을 붓고 끓였던 것이다. 두가지 물을 붓고 끓였음을 차맛으로 감별할 정도라면 가공할만큼 발달돼 있었던 차문화가 아닐수 없다.
 
우리 옛 선비들 차 달일 때 각기 수질이 다른 물을 아홉개의 독에 따로 담아두고 차맛을 달리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토록 고도로 발달한 차문화인데도 일상 속에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언젠가 BOAC 영국 항공기를 탔을때 스튜어디스더러 마실 냉수를 청했더니 이 아가씨가 싱글 벙글 웃으며 "나는 당신이 어느나라 사람인가를 압니다"고 농을 거는 것이었다. 알아맞혀보라고 하니까 "당신은 틀림없는 한국사람입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서슴없이 스튜어디스 교육을 받을 때 "기중에서 찬물 찾는 동양사람은 한국사람이다"고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자연수(自然水)를 마실 수 있는 나라일 수록 차문화가 보편화되지 않는다는 설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데 일전 국제농업개발연구원이 한국, 일본, 대만 세 나라 커피소비실태를 조사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한해에 평균 3백52잔으로 일본의 두배, 대만의 다섯배를 많이 마시며 20대의 경우 미국사람의 평균보다 더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커피 소비왕국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커피에 맛들인 최초의 한국사람은 한말의 고종일 것이다. 남하정책을 구현코자 부임한 러시아 공사 웨벨은 자기 아내로 하여금 양화장품으로 민비를 구워삶게 하고 함께 온 처형인 손택여사로 하여금 고종에게 가배다, 곧 커피에 인을 박히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친로파의 몰락에 불만을 품은 김홍륙이 고종과 세자가 마시는 커피에 독을 풀어 살해를 음모했던 사건은 유명하다.
 
그후 지금 광화문 네거리 옛 광화문 소방서 자리에서 프랑스사람 브라이상이 시탄도매상을 했는데 어깨에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메고 고양 나무 장수들에게 양탕국이라면서 가배다로 유객을 했다한다. 외래문물에 누구보다 보수적이어야 했던 임금과 나무장수가 가배다를 즐겼다면 우리 한국인의 미각유전질에 부합되는 뭣인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의 가배다 기호는 자연수나 수돗물을 맘놓고 마실 수 없게 된데 대한 문명적 반동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을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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