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페스트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09:33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음악의 도시 빈의 상징은 스테판 교회의 첨탑(尖塔)이다.

 

슈베르트가 소년합창단의 일원으로 노래했다던 그 교회를 나와 글라벤 거리를 걸어 나오면 십자가를 든 여성자(女聖者)와 아기 천사가 죽어가는 페스트 마녀에게 일격을 가하는 조각을 볼 수 있다. 17세기에 페스트 극복을 기념하여 세운 페스트탑인 것이다.
 
비단 빈뿐 아니라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 이 페스트탑이 우리 나라 동구 밖의 장승처럼 많다던데 14세기 이래 페스트가 얼마만큼 유럽 사람들의 뇌리에 공포로 작용했던가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페스트에는 패혈증을 유발시키는 선 페스트와 폐렴을 유발시키는 폐 페스트가 있는데 14세기에 유럽을 휩쓴건 후자로, 몸에 검은 반점이 생기면서 사나흘만에 죽는다 하여 흑사병(黑死病)으로 불렸다.
 
당시 꽃의 도시 피렌체,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는 두 사람에 한 사람꼴로 죽었으며 유럽 전체로는 6천만명으로 전인구의 4분의 1이 죽고 있다. 당시 흑사병의 원인으로 신의 노여움이라는 신벌설(神罰說), 천체의 현상이 지상에 작동했다는 점성설(占星說), 불만계층에서 독물을 샘물에 풀었다는 독물설(毒物說)이 나돌았었다. 일제하 관동 대지진 때 공포의 표적을 돌리고자 조선 사람들이 샘물에다 독약을 푼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어이없는 대학살을 유발했듯이 유태인들이 샘물에 독을 풀어 페스트를 퍼뜨렸다는 소문이 나돌아 4백만명의 유태인 대학살이 감행되기도 했던 것이다.
 
페스트의 발상지에 대해 중국 남부설, 인도 서부설이 있는데 균을 보유한 쥐들이 칭기즈칸을 따라 유럽에 옮겼다기도 하고 십자군을 따라 유럽에 갔다고도 한다. 1320년대 중국을 휩쓸어 5백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대역병 이 다름아닌 페스트였다고 고증한 것은 의사학자 헤켈이다. 고려 충숙왕시대에 해당되는 이 시기에 역병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페스트는 한반도에 건너오지 못했던 것 같다.
 
"페스트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속옷이나 가구틈에 숨어서 인류가 인륜을 저버리고 부에 도취하여 흥청망청할 때를 인내심 깊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 마지막 장면에서의 독백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의학자 크레그가 <페스트는 살아있다>는 책에서도 페스트 발생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충격을 주었었다. 인류 최악의 역질 페스트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온 바로 그 서인도에서 폐페스트가 발생, 연일 1백명대로 죽어가고 수십만명 대의 피난인구로 공황이 일고 있어 페스트 주인공의 독백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