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어린 고종이 등극한지 8년되던 해 미국의 동양함대는 콜로라도호를 기함으로 한 5척의 선단을 강화만(江華灣)에 진주시켰다.
평양 대동강에서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소각한데 대한 무력 응징을 하러 온 것이었다.
선전포고문(宣戰布告文)을 받은 강화부에서는 4명의 문정관을 콜로라도호에 파견시켰는데 두루마기도 입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급 관리들임이 분명했다. 선전포고를 한 적선(敵船)에 승선하여 그들이 대접하는 술과 음식을 잔뜩 얻어먹고 두루 배구경을 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갖고 싶어 얻어가진 선물을 한아름 안고 어색하게 웃으며 사진까지 찍고 있는데 그 안고 있는 것이 보스턴 발행의 주간지 <에브리 새터데이>와 마시고 난 빈 맥주병이었다.
이 한장의 사진은 창피한 역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바로 한국인이 최초로 맥주를 접한 문화접촉의 증명사진이기도 하다. 맥주에 관한 최고의 기록은 이라크에 있는 슈메르인 유적에서 출토된 기원전 3000년경의 점토판이다. 그 기록에 소맥을 원료로 하고 대맥으로 색깔을 낸 이 맥주로 관리들의 급료를 주었다했으니 맥주는 그때부터 생활필수품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주로 귀족이나 승려같은 상류사회의 가양주로 빚어먹었던 맥주가 상품화된 것은 13세기 후반 유럽에서였다.
상품화되면서 품질이 문제가 되어 독일의 각 도시에서는 감정관을 두어 품질 감정을 시켰는데 그 방법은 이러했다. 세사람의 감정관이 사슴가죽으로 엉덩이를 댄 특수바지를 입고 감정실에 나타난다. 길다란 나무 벤치에 시험용 맥주 시료를 조금씩 부어놓고 그 위에 사슴가죽을 대고 앉는다. 그러고서 빛깔 맛 향내를 평한다. 아무리 마셔도 또 조잘대도 상관없으나 엉덩이만은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이렇게 하여 3시간동안 앉혀두었다가 하나 둘 셋!하여 동시에 일어서게 한다. 이때 녹피바지가 맥주와 화학작용을 하여 잘 일어서지지 않을 수록 좋은 맥주로 쳤다. 반대로 진득한 찰기가 없이 쉽게 일어서지면 맥아(麥芽)의 점액이 적고 수분이 많다하여 질이 낮은 맥주로 품평했다는 것이다.
맥주고장 뮌헨에서는 처녀를 격리시켜 1백일 동안 조석으로 맥주로 화장을 시키고 목욕을 시켜 살결이 얼마나 매끄럽고 부드러워졌는가로 맥주의 질을 품평한 어느 한 시기도 있었다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사 맥주의 선전을 둔 3파전이 백열하고 있는데 수요자들을 그만 현혹시키고 녹피 테스트를 하든지, 미녀들 맥주목욕을 시키든지,그 렇지 않으면 서로 개성있는 맛을 분담 개발해서 다양한 수요자들의 기호와 선택에 맡겨 공존하든지 할 일이다.
[이규태 코너] 페스트 (0) | 2007.02.16 |
---|---|
[이규태 코너] 차남론(次男論) (0) | 2007.02.16 |
[이규태 코너] 구문초 (0) | 2007.02.16 |
[이규태 코너] 물꾼 이야기 (0) | 2007.02.16 |
[이규태 코너] 욕탕 망국(浴場 亡國) (0) | 2007.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