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은 엿가래처럼 휘고 다리는 댕강, 아파트는 기우뚱하더니 드디어는 땅길이 하늘에 솟아 갈라진다. 우리 국토의 구조물 치고 믿고 타고 건너고 들어가 살고 마음놓고 걸을 어떤 무엇이 더 남아있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대형 참사가 연발하면 옛날에는 잘못된 치세(治世)에 대한 하늘의 노여움으로 받아들여 위정자들은 단(壇)을 쌓아놓고 올라 앉아 가죽 회초리로써 등을 쳐 피를 흘리고 단식(斷食) 고행(苦行)으로 자책(自責)을 하고 용서(容恕)를 빌었던 것이다.
한데, 지금은 성수대교 사건에서 보듯 그 시공자나 감독자나 어느 누구도 응분(應分)의 책임(責任)을 진 사람이 없고, 그 큰 살상(殺傷)을 저질러놓고 감옥(監獄)살이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결과적으로 부실(不實)을 저지르고도 한동안 지탄(指嘆)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선례(先例)가 연쇄 인재(人災)의 원인 가운데 일인(一因)이다.
유럽의 자연에 비해 한국의 자연은 몇곱절 무섭다. 폭우(爆雨)와 홍수(洪水), 산사태, 태풍(颱風)과 가뭄과 눈보라 등 가공(可恐)할 자연 앞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겸허(謙虛)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서양에서처럼 자연을 정복(征服)하는 구조물(構造物)을 짓는다는 법이 없고, 잠깐 이용했다가 자연에 환원(還元)한다는 그런 차원에서 구조물을 대강 대강 허술하게 짓는 것이 전통이었다.
오두막 집들이 그렇고 장마만 지면 떠내려가게 놓는 다리가 그렇다. 이것이 인재를 초래(超來)하는 이인(二因)이다. 많은 사람이 얽혀 공생공존(共生共存)하지 않을 수 없게 돼있는 봉건제도(封建主義) 아래서 살아온 서양 사람들은 남의 일도 내 일과 밀접(密接)하게 연계(連繼)되므로 남의 일을 내일처럼 꼼꼼히 한다. 반면에 가족중심적(家族中心的)으로 살아온 우리 한국 사람은 우리 집 일아닌 공공(公共)의 일은 처삼촌 무덤 벌초하듯하는 것이 인재를 부르는 삼인(三因)이다.
한반도는 사시사철이 분명히 또 쉬 바뀜으로써 주된 생업(生業)인 벼농사가 계절에 쫓겨 빨리 빨리 서둘러 해놓지 않으면 감수(減數)나 실농(失農)을 초래하는 시한구조(時限構造)로 되어있다. 그래서 매사(每事)를 서두르고 서두르다 보니 날림과 부실이 개재(介在)될 수 밖에 없으니 이것이 인재 사인(四因)이다. 서양 사람들은 매사를 이성적(理性的)이고 논리적(論理的)으로 생각하는 디지털 사고가 우세하다면, 우리 한국인은 매사를 감성적(感性的)이고 직관적(直觀的)으로 생각하는 아날로그 사고가 압도적(壓到的)이다. 왜 내가 위험에 걸리랴 하는 우연(偶然)에 자신을 맡기는 아날로그 사고가 한국인으로 하여금 위험을 손쉽게 저지르게 하고 그것이 인재를 부르는 오인(五因)인 것이다.
일벌백계(一罰百戒)에 병행(竝行)해서 이 인재 오인을 구조적으로 개혁(改革)하는 것이 인재망국(人災亡國)에서 구국하는 유일(唯一)한 길인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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