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개성이 강한 임금은 왕자의 자질을 비교하여 장남 계승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임금도 있었다. 조선조 태종이 그러했다. 장남인 양녕대군(讓寧大君), 둘째인 효령대군(孝寧大君)에게 물리지 않고,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忠寧大君) 세종에게 왕위를 물리고 있다. 이에 부왕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자 양녕대군은 미친척 행세하고, 둘째인 효령대군은 머리를 깎고 입산해버린다.
흥선대원군이 왕정 복고를 하고 자기의 세아들 가운데 장남을 제치고 차남으로 임금을 삼았는데 그 분이 바로 고종(高宗)이다. 그밖에 태종(太宗)이 다섯째 아들이요, 세조(世祖)가 둘째고, 성종(成宗)이 둘째이며, 선조(宣祖)가 셋째, 효종(孝宗)이 둘째, 영조(英祖)가 셋째, 정조(正祖)가 둘째다.
미국 MIT의 한 역사학자가 지난 5백년 동안의 역사적 인물 6천명을 선택, 그 인적사항을 통계로 처리했더니 인류를 발전시킨 인재와 출생 순위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곧 큰 공적을 남긴 것은 장남보다 차남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 우열을 타고 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장남과 차남의 의무와 책임 상속을 둔 차이에서 후천적으로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서양에 비해 한국에 있어 가계상속(家系相續), 가산상속(家産相續), 제사상속(祭祀相續)의 의무와 책임이 장남에게 편중된 나라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변수가 한국 역사에서 보다 크게 작용했음직하다. 하루는 장남 놀부가 차남 흥부를 불러 이렇게 말한다. "듣거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는 데가 있으면 아무 일도 안되느니라. 부모의 세간살이가 아무리 많아도 장손 차지인데 사특한 마음 일랑 먹지 말고 속거천리하라"고-.
의무가 무거운 대신 재산의 보호를 받기에 장남은 현실에 안주하는 보수적(保守的) 생활태도를 불가피하게 한다. 이에 비해 흥부처럼 보장없이 사회에 내던져지면 시행착오(施行錯誤)를 거치면서 고난과 개척끝에 성장해 나간다. 진취적(進取的) 모험적(冒驗的)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피하다는 차원에서 장남보다 차남이 혜택받고 성공의 빈도(頻度)가 높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서양 역사에서 각계의 기존 체제에서 성공한 사람은 장남이 많은데 혁명적(革命的)인 큰 일을 한 사람은 차남들이 많다. 아우가 성공하면 형이 질투하는 카인 컴플렉스가 정신분석의 한 잣대가 돼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구약성서> 최초의 살인사건이 아우 아벨을 질투한 형 카인이 저지른 비극이요, 당(唐) 태종 이세민은 천하를 다투어서 그 아우를 죽였고, 조조의 장남 조비는 재주를 시기하여 아우를 죽이고 있다.
곧 장-차남의 자질은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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