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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경호 등교(警護 登校)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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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개화기 때 이화학당은 거의가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학교 담 밖을 나가지 못했다.

 

집에 대사가 있어 돌려보내면 주저앉아 돌아오지 않기에 학교측에서는 관복 입은 기수로 하여금 깃발을 들려 호위하여 데려갔다가 데려오곤 했다. 더러는 기수의 등에 업혀서 오가곤 했는데 청색양복에 금빛 단추 요란한 기수 호위 아래 붉은 치마저고리 제복의 아가씨들 등교 모습은 이색적인 풍물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은 개화기도 아니요 학교에 갇힌 것도 아닌데 경호원의 호위 아래 등교하는 학생이 생겨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왕따’에 의한 폭행에서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이제 왕따가 가해·피해 간 학생문제도 아니며 선생이나 학교차원을 넘어서 학부모나 경찰의 손도 아랑곳하지 않게 됐다는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왜 왕따가 이토록 혹심해졌을까. 수탉 집단에서 최상위의 닭은 모든 성원의 닭들을 쪼고 차상위의 닭은 최상위의 닭을 제외한 모든 닭을, 차차상위의 닭은 상위의 두 마리를 제외한 모든 닭을 쪼음으로써 상하 서열이 정해지고 집단이 안정이 된다 한다. 이 동물 본능인 쪼음이 인간사회에서 학교집단의 왕따로 나타난 것이다.
 
옛날에는 어릴 적부터 유교의 인,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이,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 상위자가 하위자를 학대한다는것에 대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를 가르쳐 이 동물적 쪼음을 완화시켰던 것이다. 한데 요즈음 아이들은 그 가르침에서 소외되어 길러진데다 한방에 모여있으면서 하나는 텔레비전을, 다른 하나는 게임을, 하나는 만화를ㅡ 하는 식으로 따로따로 노는 '투명한 누에고치 속의 인간'으로 자란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어색하여 고립하게 되며 이 고립이 왕따의 선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감싸고 도는 모성원리만 강해지고, 대들것 대들게 하는 부성원리가 약해진 것과 교육적 체벌을 이성을 잃은 폭행과를 싸잡아버리는 바람에 왕따를 응징할 가장 보편적인 처방인 체벌을 증발시켜 선생님을 무력화시켰다. 가해학생은 문제되지 않고 피해학생만 문제돼 온 왕따 대책이었는지라 급기야 경호 등교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겠다는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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