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세 임금 헌종·철종·고종 앞에서 판소리를 불렀던 명창 이날치의 새타령은 그분 이전에도 이후에도 따를 사람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익산 근처 심곡사에서 온갖 잡새들의 울음소리를 내는 새타령 부른 것을 들은 적이 있는 한시인 임규가 써남긴 것을 보면 "너무나 박진하여 뻐꾹새를 비롯, 이름모를 새들이 날아와 섞여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했다. 새 울음소리가 아무리 박진해도 새는 날아오지 않는다 하고 "망기 곧 기심을 잊어야 날아온다"고 이 명창은 말했다. 기심이란 날아오면 새를 잡아야겠다든가 하는 사특한 예비음모의 마음이요 그 기심의 유무를 새가 알아차리고 날아오고 안 오고 한다는 것이다.
선조 때 정승인 학자 박순의 아호가 '새가 알고 날아와 앉는다'는 뜻인 숙조지이다. 말년에 지리산에 들어가 살았는데 산길을 걸어나서면 그 지팡이 소리를 새들이 알아듣고 날아와 어깨 위며 손바닥 위에 앉는 것을 보고 얻은 아호다. 기심을 잊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대결해서 인간생활에 이용하는 것을 이화라 하고 자연과 공존해서 천연대로 두는 것을 동화라 한다면 기심은 이화의 산물이요 기심을 잊는다는 망기는 동화의 산물이다. 그래선지 우리 조상들 망기란 아호를 선호했는데 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것을 선망한 때문이다.
환경 오염과 밀렵으로 한국의 텃새 철새들이 이산하고 멸종해가고 있는 와중에 여의도 밤섬에서만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온갖 잡새가 날아들고 있다. 기심을 잊은 명창이 새타령을 부른 것도 아니요 숙조지 선생의 지팡이소리가 나는 것도 아닐 텐데 새들이 날아든다. 그 대안 쌍둥이 빌딩에 장치한 망기경 때문이라 한다. 이 고성능 망원경으로 밀렵군을 감시하고 그 동태를 파악하여 모이를 주며 오염을 씻어주어 새들의 낙원을 이룩한 때문이다. 그 빌딩 창변에 이름모를 새들이 와서 둥지를 튼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망기 논리에 합당하다.
이렇게 해서 모여든 새들을 비롯, 한국새를 총망라한 새들의 족보 '한국의 새'까지 펴냈으니 새중의 새 봉황새마저 날아들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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