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상을 한 얼굴에 모둔 기구한 표정을 피에로의 얼굴이라 한다.
어느 부위는 웃고 있고 어느 부위는 울고 있으며 찡그리고 성내고 비웃고 깔보고 실망하고 체념하고 이죽거리고 넋잃고 하는 오만상이 모아진 허망한 지경의 표정이다. '25시적 표정'이라고도 하는데 영화 '25시'의 주인공 앤터니 퀸이 기구한 인생 역정 끝에 라스트 신에 짓는 표정이 인상적이기에 생겨난 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재정학 교수 차노프는 해마다 예산이 의결되면 버지트 페이스(豫算顔)를 그려 발표했는데 예산의 부문별 다과로 이마·눈썹·눈·미간·코·인중·입술·볼·턱의 크기나 모양새를 달리하여 얼굴을 형성, 그 표정을 달리해 놓는다. 곧 예산을 둔 국민감정의 도해(圖解)랄 수 있다. 이를 테면 나라 빚이 많아지면 눈썹 복판이 솟아 험상궂어지고 의원의 이기주의가 반영되거나 납득못할 곳에 예산이 배정되거나 속셈이 드러나는 배정이거나 하면 아랫입술을 돌출시켜 비웃는 상을 도출한다. 곧 버지트 페이스는 피에로의 얼굴이다.
제나라의 관중은 이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며 그 백성들의 얼굴을 보고 부세나 공역의 과소 불균형을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냈다 했으니 동양판 예산안이었다 할 수 있겠다.
수년 전 미국 국회에서 아랫입술 돌출의 예산 낭비가 문제된 적이 있었다. 프록시마이어 의원이 지적한 여러 낭비 항목 가운데에 위스콘신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월스터 부부가 국가예산에서 10년간 수십만달러의 연구비로 '남성은 간단하게 OK를 하는 야성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는 연구를 하고 있음이 지적되어 장내에 폭소를 일으켰었다.
정치 분쟁으로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서둘러 통과시킨데다 지역사업의 나누어먹기 예산이라는 여운이 개운찮은 내년도 예산안도 아랫입술이 돌출한 비웃는 표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 국민의 고혈을 짜 만든 그 예산에 한·일의원 바둑대회 개최비용으로 3000만원이 책정되고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 특정 공연에 3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등의 배정이 의원들의 지탄과는 아랑곳없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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