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보내는 것을 일본 사람들은 망년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잊어버릴만한 막역한 사이라는 뜻에서 그말을 썼을 뿐이다.
얼마나 지난해가 지긋지긋했으면 잊어버리고 싶은 망년이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잊지 말고 다음 해에 연속시키고자 불을 켜놓고 잠을 자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를 지킨다는 뜻인 수세라 했다. 망년은 단절개념이요 수세는 연결 개념이다. 그 연결수단으로 방, 마루대청, 부엌, 외양간, 곳간, 측간, 장독대 할 것 없이 불을 켜서 집안을 대낮처럼 밝혀놓았던 것이다.
이를 불행과 병을 몰아오는 귀신이 해를 넘길 어두운 응달을 비춰 악귀를 쫓기 위함이라기도 하고,한해 동안 집안 사람의 언행을 지켜보았던 부엌신이 상천해서 옥황상제에게 그를 고하고 그에 준해 새해의 길흉을 점지받고 이날 하천하기에 경건하게 맞기 위해 불을 켜놓는다기도 한다.
아무튼 이 등불 켜고 새해 맞는 풍습은 유구하며, 보다 많은 등을 켤수록 액을 보내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생각으로 그 화려함이 끝을 몰랐다.
낙양의 남산에 이 수세등을 켜놓았는데, 백리 밖을 비췄다는 두보의 시가 있고, 양귀비의 자매인 한국부인은 수세를 하는데 80척의 높은 나뭇가지에 백개나 되는 백지등을 달아 월색을 빼앗았다 했고,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은 자기집 둘레에 천거촉이라는 등을 두르고 수세를 했다.
연말이면 서울, 아니 한국의 복판인 세종로의 헐벗은 가로수에는 미니 등꽃이 만발하여 수세를 하는데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비단 도심뿐 아니라 접객업소마다 이 등꽃을 만발케 하여 새해맞이를 들뜨게 한다.
그런가 하면 환경운동 NGO들이 온몸에 미니등을 감고 고문당하는 형상으로 몸을 비트는 등꽃피우기 반대시위를 하여 대조적이다. 나무도 생존하는데 어둠을 필요로 하고,가지를 꺾고 잎에 약물을 뿌리거나 곁에서 잔학한 짓을 자행하는 것만 보아도 반응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는 마당에, 이 나무등 켜는 것은 전기고문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마저도 비정이 활개치고 있는 판국에 식물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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