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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연수강(延壽網)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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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송나라 때 바닷가에 사는 한 어부가 100길이나 되는 거대한 어망을 짜는 일로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큰 어망을 들고 나갈 수도 없고, 갖고 나갔다 해도 칠 수도 없는 어망이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쓸모 없는 망을 뭣하러 그렇게 얽어나가느냐고ㅡ. 한올 한올 맺어나가는 데서 내 목숨이 길어지는데 쓸모가 없다니요 하고 반문했다. "수족에 힘이 빠져 바다에 못 나가게 된 50세부터 이 망을 짜기 시작, 지금 70세까지 짠 것이 이것이오. 앞으로 20년 더 짜나갈 것이오" 했다.
 
송나라 학자 주신중의 '노계론'에 나온 사례로, 늙어서 할 일을 늙기 전에 마련해두어야 하고, 늘그막에 그 일에 마음을 쏟으면 주변에서 괄시받아 비관하게 마련인 노후가 뜻있고 즐거우며 따라서 목숨도 연장된다 해서 이를 연수망(延壽網)이라 했다. 곧 노후를 대비하고 늙어서 할 일을 미리 마련하여 소외로부터 자신을 구제하는 인생작업을 상징적으로 연수망이라 한다.
 
연말을 기해 통계청이 '2000년 한국의 사회지표'를 발표했는데, 그에 보면 우리 한국사람으로 연수망을 짜는 사람 곧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은 53%에 불과하며 특히 여자는 3분의 1만이 준비하고 60세 이상의 노인층마저도 42%에 그쳤다. 곧 과반 이상이 노후에 등한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G H 존스가 '유럽문화의 황혼'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경친(敬親)농도가 진한 문화권이요, 그 효도(孝道)문화권의 환상에서 못 벗어난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식 의존은 위대한 착각이다.
 
같은 경친문화권에 속하는 일본에서는 노후를 자식들에게 바랄 수 없다 하여 수발보험이 시작되고 있으며, 노후 수발의 필요는 우리나라도 다를 것이 없는 노년 황무지다.
 
문호(文豪) 괴테는 늙어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자 식품창고 열쇠를 베개 밑에 감추어두고 끼니마다 찾아오게 했다. 저 먹을 것 들고 나오게 하여 이를 저울에 달아 분배하곤 했는데, 그렇게 자손들을 불러들여 소외감과 고독을 소멸시켰으니 눈물겹다. 21세기는 이 노인 소외의 달라진 가족관에서 시작된다 해도 대과가 없을 것이다. 본인도 연수망 채비를 해야겠고, 나라도 노후 채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새해이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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