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설(雪)자를 뜯어보면 비 우(雨) 아래 튼 가로 왈(曰)자로 돼 있다.
튼 가로 왈자는 방이나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뜻한다. 부인을 뜻하는 부가 빗자루 든 여인이란 뜻으로 일본에서는 청소만 하는 차별 용어라 해서 부인이란 말 추방운동이 벌어진 지 오래다.
곧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길가 풀섶에 맺히면 이슬이요, 안개처럼 공중에 맺히면 안개(霧)며, 수풀처럼 쏟아져 내리면 장마(霖)요, 흩어져 내리면 싸라기(霰)이듯이, 내리면 빗자루로 쓸어내야 할 비가 눈(雪)인 것이다.
지방 자치 규약이랄 향약가운데 눈이 내릴 때 이웃에 자식 없는 노인이나 홀아비 과부 고아가 살고 있으면 그 집 마당과 집앞을 쓸어주게끔 돼 있고 만약 이 일을 게을리 하면 향약의 모임이 있는 날 사람 많이 나드는 곳에 세워 우세를 시키는 등 응분의 벌을 받았다.
양식이 떨어지면 이른 새벽 좀 사는 집에 가서 청하지 않는 마당쓸이를 한다. 이것이 양식 떨어졌다는 신호요, 주인 마님이 일어나 마당쓸이를 확인하면 머슴을 불러 그 집 식구에게 이레나 보름 정도 먹을 것을 가져다주라 시킨다. 이렇게 마당쓸이로 얻어먹은 양식은 갚을 의무가 없으며 다만 그 집에 대사가 있을 때 밑심부름을 하거나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가서 마당을 쓸고 길 앞을 쓰는 눈쓸이로 보답하는 것이 관례였다.
미국의 지방도시에서는 자기집 앞의 가랑잎이나 눈은 반드시 쓸게끔 의무가 지워져 있다. 눈을 쓸어 모아 놓으면 시청의 제설차가 모조리 실어간다. 만약 제설을 하지 않으면 시청에서 나와 눈을 쓸고, 후에 과태 벌금고지서를 받게 된다. 그러기에 눈쓸 사람이 없는 노인 세대에서는 마을의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눈 내리면 와서 눈쓸이 하는 약속을 해둔다. 좀 예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눈쓸기 아르바이트는 한 번에 1달러인데 과태 벌금은 3달러였다. 그러기에 큰길이건 골목길에 쓸지 않고 남아 있는 눈을 볼 수가 없다.
서울에서는 자기집 앞의 눈을 쓴다는 것을 볼 수 없고, 그래서 교통지체로 시간당 30억원이 손해가 나고 헛바퀴 도는 데 드는 기름값, 눈녹이는 약값 등 눈쓸이 과태에서 시간당 평균 50억원이 날아간다고 한다. 내집 앞 쓸기만이라도 생활화됐으면ㅡ 절감케 하는 작금의 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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