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드보르자크가 미국 아이오와에서 우리들 귀에도 익은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하고 있을 때 폭설이 내렸다.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열흘 동안을 하루에 감자 하나씩 먹고 연명했다.
눈이 많은 미국의 동북부에 가면 지하실에 커다란 냉장 식량창고 하나씩이 마련돼 있게 마련인데 이 폭설에 대비한 생활의 지혜다. 그래선지 서양사람들의 눈 이미지는 공포요 죽음이며 온 천지가 일색으로 보인다 해서 맹목 불감증을 연상하고 상징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눈은 희고 밝고 곱고 풍년을 기약한다. 그해 첫눈을 받아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눈으로 살갗을 문지르면 희고 부드러워진다고 알았다. 그래서 부드럽고 고운 피부를 설기·설부라 하지 않았던가.
첫날 밤에 눈이 내리면 평생 금슬이 좋느니, 첫눈 세 번 받아 먹으면 감기를 앓지 않는다는 등 미래까지 긍정적이게 하는 한국의 눈이다.
가족을 이산시켜 굶주리게 하는 폭설이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정조연간의 반체제 선비 신광하의 백두산 기행문인 <백두록>에 짐승처럼 몸에 털이 난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함경도 경원에 사는 한 가족이 백두산 대류동에 들어가 사는데 폭설로 외계와 두절되어 나어린 자매만이 눈 속에 살아 남았다. 한데 곰과 사슴들이 이 아기들을 먹여 살려 산 속에서 살아왔는데 온몸에 털이 나 모녀(毛女)로 불렸다 했다.
설악산의 오세암 연기설화도 폭설의 개연성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그 암자의 설정선사가 어버이 잃은 다섯 살난 조카 아이 하나 데리고 사는데 동냥 나갔다가 눈에 막혀 못 돌아왔다. 해동한 다음에야 길이 뚫려 돌아와보니 굶어죽었을 것으로 믿었던 그 아이가 살아 반갑게 나와 맞는 것이었다. 그 동안 파랑새가 날아와 밥을 주고 갔다는 것이다. 파랑새는 한국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화신(化身)인 것이다.
폭설에 대한 기록은 신라 파사왕 26년 경주에 내린 3척 눈을 필두로 평지에 5척 6척 쌓인 기록이나, 눈에 깔려 죽은 인축의 사례도 허다하다.
지난 주말에 내린 눈이 대관령에서 3척이 채 못되고 서울에는 반척밖에 내리지 않았는데도 20년만이라고 법석대는 걸 보면 온난화를 실감하게 하는 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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