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속곳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23:18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계속된 한파속에서 시민단체의 젊은 남녀들이 속옷바람으로 거리에 줄지어서서 내복입기 캠페인을 벌렸다.

 

내복을 입으므로써 실온을 낮추어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소비절약 운동인 것이다. 이를 맞추어 한국사람은 아무리 추어도 두 사람 가운데 한사람꼴로 내복을 입지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있어 내복 문화는 양복문화가 정착하면서 침투해든 외래문화였다. 서양에서는 특히 여장에서 내의가 발달했는데 코르셋이나 브레이져같은 체형을 가다듬기 위한 속곳, 슬립이나 페티코트처럼 겉옷밖으로 깃을 들어내는 장식용 속곳, 슈미즈나 팬티처럼 땀이나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입는 살붙이 속곳으로 대별된다.
 
16세기 프랑스 귀부인들은 드레스 아래 석장의 페티코트를 끼어 입었으며, 앙리4세의 애인인 가브리엘 데스드레는 겨울에 12장의 페티코트를 끼어 입었다. 나포레옹의 아내 죠세피느는 498매의 속곳이 있어 하루에 세번 갈아입었다지만 한 속곳을 3년 3개월이나 갈아입지않은 공주도 있다. 1601년 스페인군이 오스텐데성을 공략했을때 스페인 이사벨라 공주는 그 성이 함락될 때까지 속곳을 갈아입지 않는다고 신에게 맹서하고 이를 지켜냈다.
 
이처럼 중세에는 속곳을 갈아입지 않으므로써 불결에 감내하는 것이 고행의 한 수법이기도 했다.이 공주의 하얗던 속곳의 변색이 소문나 이시벨라색(황회색)의 색이름이 탄생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복식문화에서 속적삼이나 단속곳 잠방이 곰방중이같은 속에 입는 옷이 없지않았으나 그 속곳 바람으로 나들이 한다해서 흉이 되지않은 외의 겸용이었다. 말기라하여 젖통을 조이는 브래지어며 다리속것이라하여 씨름할 때 삽바같은 팬츠도 없지않았으나 보편성이 없었다. 대신 추으면 배자 마고자 직령 창옷 두루마기를 위에다 끼어 입었던것이다. 그래서 옷이 서양처럼 내복지향이냐 한국처럼 외복지향이냐로 문화권을 나누어보는 시각도 있다.
 
유럽에 속곳문화가 발달한 것은 한국보다 한대에 속하고, 한국의 평면 난방에 비해 입체 난방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옷도 양복이요 난방도 입체화했으며 추위도 유럽을 뺨치는지라 속곳이 새삼스러워진 작금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