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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김춘수

한국의 名詩

by econo0706 2007. 2. 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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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클립아트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김춘수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저를 쓰러뜨렸다.


순간
부서진 네 頭部는 소스라쳐 30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네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벼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살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까?
죽어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 세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투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은
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


나는 스물 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가야서 감방에 불령선인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콘크리이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서 생생한 아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의 불면의 담담한 꽃을 피웠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강에서 살얼음이 지는 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非情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국 속의 생생한 아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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