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규태 코너] 아산주의(峨山主義)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0. 09:08

본문

[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울산에 조선소를 짓고 있을 때 공사현장에서 먹고 자던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지프를 손수 몰고 현장을 돌아보는 것이 일과였다.
 
추워진 11월 어느날 새벽 바윗덩이를 피해 핸들을 꺾은 것이 바다 속으로 다이빙했고, 사투 끝에 수면 위에 떠오르고 보니 안벽과 200여 나 떨어져 있었다. 철근 하나 붙들고 차가운 물살을 이겨내며 초소를 향해 사람을 불렀다. "누구요?" "나야!" "나가 누구요?" "누군지 알아서 뭐해. 빨리 밧줄이나 가져와!" 초소 경비와 나눈 대화다. 그때야 알아본 경비는 "그런데 회장님이 왜 거기 계신대요?"라고 물었고, 아산은 "이 자식아 빨리 밧줄이나 가져와"하여 구사일생을 했다.
 
왜 쇳덩이가 물에서 뜨나ㅡ 하는 소박한 질문에서 배를 만들기 시작했고, 만들면서도 이처럼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산 간척지 마지막 물막이 때도 갖은 수문학적 공법이 못해낸 일을 폐유조선 끌어다 선체로 막아 물살을 약화시키는 소박한 발상으로 성공시켜 정주영 공법을 창출해냈다.
 
지성보다 실천, 이론보다 체험, 논리보다 행동을 우선하고 소중히 하여 경제사의 자락에 아산탑을 우뚝 세워놓은 아산이다.
 
그의 반지성의 실천철학은 바로 그가 살아온 일생의 귀결이다. 소 한마리 훔쳐 몰고 가출하여 막노동에서 엿공장 직공으로, 엿공장에서 쌀가게로 전전한다. 엿공장에 다니게 된 것도 기뻤지만, 쌀가게로 옮겼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전차삯 5전을 아끼느라 구두에 징을 박고 다니면서도 신이 났고, 5전짜리 밥을 사먹다가 10전짜리를 사먹을 수 있게 됐을 때 그 행복함을 늙도록 기억했던 아산이다.
 
미국의 위인들 배출 공약수로 '통나무집 신화'를 든다. 개척시대의 미국사람들은 자신이 숲을 발견, 통나무를 베 이를 조합해 만드는 통나무집을 스스로 지어 살지 않으면 안 되었듯이 우리나라에서 격동의 20세기 중엽을 살아내는 데는 자력과 행동으로 뭣인가 일궈내는 실천적 문화가 필수요, 또 요구되었었다. 한데 외래문화의 큰 파도에 휩쓸리고 안이한 편법상승에 물러져 자수성가 아닌 타수성가가 기승을 부려왔다.
 
그 와중에 한국적 통나무집의 신화를 일군 대표적인 인물이 아산이요, 아산의 죽음은 이 아산주의의 조종(弔種)이랄 수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