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만주 심양에서 북경으로 떠나면 첫 참이 유조구다. 병자호란 때 납치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어우러져 담배농사를 짓고 살았던 곳이다.
그곳에 있는 큰 호수에는 한 조선 피랍민 부인의 애화가 깃들어 있다. 어릴 때 생이별한 아들딸이 보고싶어 노자를 마련해 고국에 돌아갔더니 오랑캐에 더럽혀진 몸이요 가문의 수치라 하여 아들딸 만나게 해주지도 않고 쫓아내어 다시 유조구로 돌아와 향수병을 못 가누어 이 호수에 투신했다 한다.
바로 그 유조구 못가에 거대한 석조 전쟁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 정면에 나라의 수치를 잊지 말자는 '물망국치(勿忘國恥)'와 18이라는 거대한 숫자가 새겨져 있어 18기념관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1931년 9월 18일 만주전쟁 발발일을 잊지 말자는 뜻인 것이다. 중국침략을 노리던 일본 제국주의는 군사행동을 일으킬 명분을 조작하고자 저희네 관동군 장교 세 명으로 하여금 유조구의 만주철도를 폭파시켜놓고 중국군이 폭파시킨 양 조작, 전쟁을 일으켰던 바로 그 현장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삽시간에 산해관 동쪽의 중국땅을 점령했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영입하여 괴뢰 만주제국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이곳 철도를 중국군이 폭탄으로 폭파한 양 폭탄 모양의 비를 세웠던 것을 2차대전 후 쓰러뜨렸고 그 쓰러진 폭탄비도 고스란히 그 현장에 보존돼 있음을 보았다.
일본 제국주의는 이 중국침략의 시작인 전쟁행위를 축소하고 자기네가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중국측이 유발한 우연한 대응임을 위장하고자 만주사변으로 호칭해왔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관행으로 이 말을 써왔다. 사변(事變, Incident)이란 우발적이고 부수적인 돌변사를 뜻하지 본격적인 전쟁이 아니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음모 호칭이다.
이 유조구가 자리하고 있는 랴오닝(요녕)성에서는 사변이라는 호칭은 전쟁도발을 은폐하기 위한 용어이므로 쓰지 않기로 하는 한편 국제학술회의에 관계 학자를 참석시켜 이것은 사변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어난 14년에 걸친 중일전쟁과 2차세계대전의 시작임을 강조, '만주전쟁'으로 호칭해야 함을 역설했다. 금년이 만주전쟁 발발 70주년이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침략을 정당화하는 만주사변, 지나사변하는 사변 호칭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