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추이를 우려한다
여당이 김영삼 신민당총재를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제명한 충격적인 사태는 마침내 야당의원 전원의 의원직사퇴서 제출이라는 우려할 정세를 초래하였다.
헌정사상 일찍이 전례가 없던 이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여 우리는 오직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국의 혼미상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하는 경우 이로 인하여 빚어질 여야관계의 파국적상황과 국회의 정상적인 기능상실 등 정국경화의 시국의 불안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점에 관해서 여야를 막론하고 이견이 없을 줄 안다.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은 가깝게는 김총재의 제명이고, 멀리는 YH여공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김총재의 제명은 한마디로 여당의 정치력량의 빈곤이 가져온 불행한 사건이다. 김총재의 제명은 아직 며칠이 되지 않았으나 지내놓고 보면 어째서 여당측이 그 때 그렇게도 여유가 없었는지 더욱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총재에 대한 징계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것이 그에 대한 여당측의 정치공세의 일환이라는 정도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징계동의안이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그리고 변칙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때 국민이 받은 실망과 충격은 그만큼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태 이후의 국민의 여론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여당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뉴욕타임스지 회견기사를 비롯하여 그동안의 김총재의 일련의 발언이 여당을 극도로 자극하였을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현체제를 수호하려는 여당측 입장에서 도저히 용인하기 어려운 대목도 없지 않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원내의 3분의 2 이상이라는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그의 의원직과 박탈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면 민주주의의 원리나 정치도의는 차치하고라도 여당간부들의 정치력량과 판단력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당장에는 득이 되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손이 된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하고 덮어놓고 강경조치를 주장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게 한 사람들은 이 사태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동찰력있는 정치인들이라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남보다 앞서서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선견지명을 가져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은 여당간부들은 계속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일찍이 전례없는 야당의 의원직사퇴서 제출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여 앞으로 여당이 어떻게 대처할지는 알 수 없으나 최대한의 성의로 임하기를 바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하물며 사실상의 단일야당의 당수가 의회에서 추방당한 사태로 빚어진 것이 이번 사태라고 할 때, 구구한 국면호도책으로 나올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이다. 정직한 자세를 취하고자 할 때는 잘못이 있으면 이를 바로 잡는 길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여당이 국민앞에 좀 더 겸손한 자세로 겸허하게 여론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기대한다.
신민당이 자기당의 당수에 대한 의원직박탈사태에 대항하여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데 대해 우리는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의원직사퇴서 제출 자체가 하나의 투쟁방안일지언정 투쟁목표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여 앞으로의 사후대책에 국가적 입장에서 또 정국의 정상화를 위해서 신축성있는 자세로 임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여협상의 창구는 항상 열어놓고 있어야 할 줄 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또 하나 심히 유감스러운 점은 대미관계이다.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전례없이 글라이스틴대사를 소환한 사실은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더 추이를 보아야 할 것이나 국내정치가 국가의 대외관계에 손실을 초래하는 사태가 있다면 이는 진실로 국가적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다. 오늘의 우려할 사태를 맞아 여야정치인들은 사심없는 입장에서 조속히 여야대화로 국면타개책을 강구하여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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