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신동아」12월호에 본사 기자 2인이 공동집필한 「차관」이라는 해설기사가 문제되어 본사 기자 여러 명이 연일 중앙정보부에 소환 심문을 받았고 또 현재 심문을 받고 있는 이도 있다.
23일에는 필자의 한 사람인 경제부 박창래 기자가 연행되어 5일간 심문을 받았고 (그중 제3, 4야는 각각일단 귀가)필자의 또 한 사람인 정치부 김진배기자는 때마침 동남아려행에서 돌아오는 길로 25일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연행된 채 29일 오전 현재 풀리지 못하고 있고 (그중 제3, 4야는 일단 귀가)신동아부의 손세일 부장은 25일 연행되어 3일간 심문을 받았다.
또 28일에는 신동아부의 이정윤 기자와 심재호 기자가 각각 심문을 받았다. 이리하여 이 필화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수사를 받게된지 7일째인 29일에는 정치부 유혁인 차장을 소환하고 홍승면 신동아주간에게 출두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된 기사의 큰 줄거리를 펴보면, 현재까지의 차관의 실태, 차관의 도입과 병행하여 생성된 재벌의 생태, 그 정치세력과의 관련과 특히 정치자금의 문제들에 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정리한 뒤, 그러나 차관이 가져온 경제성장의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여 이를 자세히 설명하는 한편으로, 정치에 결부된 차관의 무원칙하고 특혜적인 일면이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하면서, 일반 소비자의 불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차관업체의 폭리, 차관을 얻고도 주체 못하는 업체를 위한 현금차관이나 대불같은 또 하나의특혜, 닥쳐온 원리금상환에 즈음하여 따라나올 국제수지의 비관적인 전망 등을 역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된 이 기사가 말하는대로, 차관에 따르는 부정적인 부작용을 억제하지 못하는 한 「흥하면 업자가 부자되고 망하면 국민이 망한다」는 뜻에서 그것은 국민전체의 절실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으며 또 그 기사가 말하는 대로 『외자도입의 「공」을 쉽사리 불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차관이 가져온 「과」는 불가피한 것이었느냐, 제거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었느냐, 다시 말하여 차관도입에 주도된 고도성장은 과연 그러한 희생 위에서만 가능하였느냐』라는 국가적인 절실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기사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자료와 논거는 이미 그때 그때 보도 평론된 것들이고, 이 기사가 크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개별적인 보도의 내용이나 논평의 취지들을 종합하여 차관과 그에 관련되는 사상 등, 되도록이면 전모를 독자들 앞에 정리 제공한 점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차관이 가져온 부정적인 부작용들은 곧 우리 경제발전과 자체를 저해하고 나아가 정치적 사회적인 부패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국민적인 지대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차관에서 온 긍정적인 성과를 종합 선전하는 그만큼의 성의를 가지고, 차관에서 오는 부정적인 부작용도 인정해야 마땅할 것이며, 만일 그러한 부작용이 우려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소신이 정부에 있다면 그 소신대로 국민을 합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할 일일지언정, 그것은 결코 차관의 당사자들이나 정책수립자들 사이에서, 어둠으로 은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부가 아니한 일을 기자가 한 것이다. 그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벌을 주겠다는 것인가.
정치자금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제의 이 기사가 말하는대로 「정치자금의 문서를 만드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것을 밝힐 기관도 사람도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인 우리 사회에서 정치자금에 다소 언급했다 하여 그 증거를 제시하라한들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부 업자에게만 치부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고 있다』는 판단, 『이들 혜택을 받은 업자로부터는 그 시혜의 반대급부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공급을 받고 있다』는 판단은, 그 특혜를 주고 받는 이들은 어떻게 볼는지 모르나, 그밖에 제3자 어느 누구에게 묻더라도 이것은 하나의 통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정치자금의 공개 내지 정화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다소의 차는 있을지언정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불정하고 은폐된 것일수록 그 나라는 부패한 나라인 것도 물론이다.
기자는 그 부패의 생태, 정치자금의 생태에 한걸음 접근했다. 그것도 단정적인 서술일 수 없어서 그나름의 근거에서 조심스러운 서술로 시종했다. 정치자금의 생태를 완전한 증거 위에서 제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속이라 하여 정치자금의 생태에 한걸음 접근했다는 것만으로 역시 상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벌을 받는다 하면, 이것은 어느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의 사명을 질식시키는 일이요, 부패조장하는 일이요, 사회정화의 싹을 자르는 일이요, 따라서 우리의 반공력량을 약화시키는 일이 된다.
더구나 이 기사에 관하여 중앙정보부가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는 데에도 이의가 없을 수 없다. 중앙정보부법에 의하면 정보부의 직무는 「기타」사항과 같은 규정도 없는 다섯 가지로 명시되어 있지만, 차관의 실태를 논하고 그 정치자금과의 관계에 언급함으로써 건전한 경제발전과 건전한 정치풍토 수립을 희구하였다는 것이 이 5개 항목이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소환되었던 몇몇 기자에 대한 출두요구서에 의하면, 「반공법위반혐의」에 관련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어 이 필화에 중앙정보부 직무의 제3항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되지만 수사가 시작된지 여러 날이 지나도록 구속영장도 발부받지 아니하고 반공법위반이라는 중대한 혐의를 거는 피의자를 자택으로 돌려보냈다가는 다시 소환하는 것이 과연 반공법위반이라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의 수사인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정부의 차관정책을 비난한 기사가 계기로 되어 새삼스럽게 반공법위반의 혐의를 건다는 것도 정부기관으로서 심히 떳떳해 보이지 않는 일이다. 국민일반이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이 공산주의자의 준동을 막는 입법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귀고리 코걸이로 남용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수가 많은 것은 중앙정보부 자체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구속영장도 없이 오래도록 사실상의 구속상태에 두고, 혹은 구속영장없이도 얼마동안 소환할 수 있다해서 무더기로 출두를 요구하여 여러 사람에게 막연한 불안을 주는 것이 반공법의 정신일 까닭은 없다. 더구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공공이 알아야 할 일을 알리는 기자에 대하여는 더욱 신중을 기한다고 하는 것은 종래에도 정부당국이 여러번 다짐했던 일이다. 그것은 기자라 해서 특권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언론자유라는 국시가 저상됨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였던 것이다.
민중은 알권리가 있고 매스콤은 알릴 권리가 있다. 차관으로 자립경제를 내다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한다면, 차관이 부패나 국민간의 지나친 불균형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도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한다. 민중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알리지 않으려 하고 매스콤이 당연히 알려야 할 것을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이 집요하다면 그럴수록 그런 독선과 이기는 전국민의 이름으로 배격되어야 한다. 우리가 암흑 아닌 광명의 민주주의를 키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승공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면 알 권리, 알릴 권리는 모든 무엇에 앞서 완전히 전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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