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장차 어찌될 것인가 하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속에서도 그래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는 일루의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이 글을 씁니다.
자고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직언과 충고와 간지가 군신지간에 부자지간에 그리고 친구지간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직언이 대부분의 경우 죽음도 마다하고 행해졌건만 용납되기는 커녕 오히려 증오와 멸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역사의 고난과 운명의 희롱이 이런데서 빌미 잡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이니겠읍니다. 역사는 자연이 비어있는 스페이스를 못 마땅히 여기듯이 침묵을 가장 싫어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춘추」에도 있지만 군주를 시역한 난신적자를 토벌하지 아니하고 그냥 내버려둠은 그 나라에 사람다운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 「국무인」의 원망을 사지않기 위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의인을 점지하거나 차젼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행위의 심판자로 아는 까닭도 이런데서 연유하지 않을 까요. 조카 단종을 활시울로 목졸라 죽인 수양대군의 찬탈과 서슬로도 사육신의 항거와 순절이 있었거늘 하물며 여타의 불의에 대하여서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읍니다.
박장군, 내가 작년유월 내각수반의 직에서 물러난 이래 이날 이때까지 가장두려워하고 서글프게 여기는 것은 한때 오천원대까지 육박한 적이 있는 쌀값, 천정불화의 물가고, 또 때아닌 장마로 인하여 적미병에 걸린 보리를 먹고 쓰러진 절양농민들의 참상, 늘어만가는 도시의 실업자,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국민들, 다 가슴아픈 일 들입니다.
재야의 통합이냐 연합이냐 정의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 선거관계법의 정비, 저자세의 한일회담이나 알쏭달쏭한 세칭 의혹사건에 대한 판결, 한심하고 걱정스럽기 짝이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자나깨나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왜 오르지 국방에만 전념봉사해야 할 국군의 신성한 군사력이 적을 위압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도 오히려 정적을 위압하기 위해서 그릇행사되고 있는건가 - 이 엄연한 현실이 과장된 표현이라고 하면 그런 인상이라고 정정하여도 좋습니다.
5․16군사혁명의 사회적 후진성이나 시대적배경이나 역사적 의의는 민주국가에 있어서의 군사력은 정부에 의한 정치적 지도와 의회에 의한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건만 오늘의 국군은 과연 어떻읍니까? 감독을 받아야 할 군대가, 지도를 받아야 할 군사력이 주객을 전도하고 본말을 뒤집어 중앙청을 점령하고 의회를 해산한지 어언 2년이 넘었지만 무엇이 미흡하고 부족한지 또다시 앞으로 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벼르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것이 구국의 길이라고 까지 공언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그래 이나라의 주인이 누굽니까? 이 나라에 정녕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런 안하무인격인 어거지가 위세를 부릴 리가 만무합니다. 혁명을 일으키지 않은 사람은 바지저고리입니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 합니까? 이게 백성이 사는 나라며 어디 자유민이 사는 나라입니까? 6․25는 뭣때문에 치렀읍니까?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더욱 해괴망측한 것은 이러지 않고서는 이 나라가 아주 망할 것처럼 나팔을 불고 돌아다니는 약장수들의 그럴싸한 선전 선동입니다.
위기 의식이란 순리적으로 배태하여야지 이것을 제약회사가 만들어내는듯 해서는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정채가 탄로납니다. 군부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히 근거를 둔 관찰로서 나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민정편승의기화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가령 혁명주체세력이 계속 집권하지 않을 것 같으면 구악들이 부패와 정쟁을 또다시 일삼을 것이 뻔하며, 그렇게 되면 일단 물러간 군부일지라도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을 터인즉 여기에 이른바 혁명의 악순환이 벌어져서 이나라 정국은 벌집을 쑤셔 놓은것 같이 대혼란을 극하리라는 방정맞은 점래라든가, 또는 차라리 이럴바에야 신의고 공약이고 뭐고간에 자체에 눈 딱감고 해치워야 한다는 비장한 애국심들은 따지고 보면 다 불행을 요행으로 삼으려는 억설에 지나지 않습니다.「너는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삼지 말지니라」.
후진사회에서 부패와 독재는 마치 바늘가는데 실가듯 붙어다니기 마련입니다.그러므로 제도화하지 않은 경미의 부패를 묵인하는대신 독재를 가일층 배격하겠다거나 반대로 선의의 독재를 용납하는 대신 부패를 철저히 뿌리뽑겠다는 사회개혁은 황당무계한 잠꼬대입니다. 군정2년이 그것을 똑똑히 말해주고 있는 산 교훈입니다.
그리고 쓰라린 우리는 부패와 독재중 그 어느것도 참을 수 없읍니다.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 군사지배를 환영할 수는 절대로 없읍니다. 부패도 밉지만 독재는 더욱 밉습니다. 군인지배를 거부하는 까닭이 군인당에 의해서 강요되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전체주의적 권력주의적 독재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서 입니다. 민주정치가 중구난방이고 부패하기 쉽다고 하여 획일주의와 능률을 부러워 할 수는 도저히 없읍니다.
또 한가지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이 나라의 정치가 한 사람의 거취로 인하여 왜 이다지도 떠들석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박장군이 한 사람이 다름아닌 바로 당신이십니다.
흥선대원군의 10년에 걸친 무소불위의 권능을 연구한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그 일소에 초목이 향영하고 그 일노에 강산이 진탕하였다』고.
우리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여 탄생한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자유의 쇼윈도, 공산주의의 바다에 떠있는 자유의 섬이라고 하는 상징 이상의 것입니다. 또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세계의 연결점, 희망의 횃불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도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이런 조국에 한 나라는 한사람의 지도자를 섬겨야 한다는 패시즘의 지도자원리를 적용할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 아니겠읍니까. 우리는 민주정치의 병폐와 약점을 모르는바 아닙니다.
그렇지만 민주정치를 머릿수에 의한 중우정치라고 타기하여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민주주의의 겸손한 신봉자여서 민중이 설혹 그의 옷자락에 매어달리더라도 내가아니면 안된다고 뽐내는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세계대세를 두루 살필줄 아는 국제적안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내치에서는 어느 정도 획기적인 치적을 남긴 대원군도 세계의 진운과 국가가 지향하는 바 진로에 대하여 전연 이해와 시대적 센스를 가지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심지어 대륙에서의 변동을 재빨리 찰지했던 폐군 광해주보다도 식견이 좁았읍니다 . 역사의 전환점에 처하였으면서도 방향의식이라는게 통 없었읍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전국각처에 척화비를 세워 쇄국하였고, 싸우기 성가셔서 뱃머리를 돌리는 불란서․미국함대를 아주 격퇴한양 착각하고 의기양양해 하였고, 여러달치 봉급(군료)를 못 받은 군졸들을 충동하여 임오군란을 일으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청국군대에게 납치되어 3년간이나 이홍장의 별장에 연금되지 않았읍니까. 대원군은 좋게 말하면 과단성있는 개혁자요, 나쁘게 말하면 완고한 군정정치가였읍니다.
그가 한때 그런 권력정치를 괘도난마와 같이 단행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지도자로서의 차질에서가 아니라 국왕의 생부로서, 종반의 존장으로서의 위엄에서였을 것입니다.
박장군,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할 것없이 내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처럼 위험하고 우매한 사상은 없읍니다. 우리는 이같은 개인숭배를 자유당치하에서 이미 뼈저리게 경험하였읍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고 원망한다면 오직 자기자신밖에 없지만, 우리는 한때 『이박사없이 국민의 자유가 보장될 수 없고, 자유당을 무시하는데 자유가 있을수 없다』고 하는 한국판 20세기의 신화를 신봉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내나 남이나 권새에 빌붙어서 자리를 유지하려다 보니까 믿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시 「알고 한번, 모르고 한번」의 비겁한 줄타기 였음을 이 기회에 솔직이 고백합니다.
5․16이 일어나자 나는 누구보다도 면저, 심지어 조지․워싱톤대학에서의 학업을 중단하면서 까지, 또한 우방친구들의 오해를 사면서 까지 박장군, 당신을 지도자로 받들려고 하였읍니다.. 당시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하여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염원은 불과 반년이 못되어 무참히도 짓밟히고야 말았읍니다. 나는 나의 고지식했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후회치 않을 수 없었읍니다. 내가 내각수반의 자리를 표연히, 아무런 미련도 없이 오직 환멸의 비애만을 가득히 안고 중앙청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도 이때문이었읍니다. 내가 장군을 사랑하지 않았던게 아닙니다.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보다 애절하게 희구했기에, 그리고 부패를 증오했기에, 또 그리고 국민을 배신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 이상 언급하는 것은 장군과의 우의나 혼란한 현 시국을 한층더 어지럽히지나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그만두겠읍니다. 그리고 참을수 있는 한 앞으로도 수국여병으로 있을까 합니다. 나는 결과적으로 의롭지 못한 일에 참여했던것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군정연장 반대를 위한 구국투쟁에 있어서 선봉이 될 것을 결심하였읍니다. 이 투쟁에 대한 유일한 보상은 오직 양심의 만족뿐입니다.
장군, 말과 사슴은 삼척동자라도 식별할 줄 압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말을 말이라 하고,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는데 죽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되나 봅니다.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읍니다. 이러고 볼진대 4․19는 꿈자리 사나왔던 우리들의 혼명한 잠을 깨워주었읍니다. 그리고 4․19혁명은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읍니다. 이제 두번 다시 『아무개 아니면 원조도 덜온다』, 『아무개아니면 정치의 안정도, 경제의 부흥도 이룰 수 없다』,『아무개 아니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풍토를 조성할 수 없다』고 하는 따위 데마고그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장군이 하필이면 사전조직과 그 조직원리, 자금출처등으로 온 천하의 의혹과 지탄을 사고 있는 모당의 후보자로서 출마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래도 주체세력안에는 온건파라고 불리는 올바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는듯 합니다만.
박장군, 혁명정부가 이탯동안 국민에게 공약과 선서를 번복하고 선언하기를 도대체 몇번이나 되풀이 하였읍니까. 국제적 공약과 신의를 배반하면 국가이익에 해를 끼치는 바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아십니까. 군인이한 좋은 의미에 서나 나쁜 의미에서나 우직해야 하고 신의와 청렴결백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항간에 떠도는 쑥덕공론이 군사정권을 뭐라고 평하는지 아십니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군사정권이라고들 합니다. 군사정권에 대한 본신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공무원들의 비위사건을 날로 증가하여 가고 있고 또 범죄사건도 늘어만 가고 있읍니다. 정치의 잘 잘못은 단적으로 이것을 가지고도 판별할 수 있읍니다. 그나 그뿐입니까. 군사혁명이 이탯동안에 물가는 50%나 뛰어올랐고 외환부족은 경제를 파탄의 길로만 몰아넣고 있읍니다.
경제성장율은 인구자연증가율에 도저히 미치기 힘들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흉년을 평년작으로 오산하고 목전의 소리에 현혹된 나머지 쌀수출을 서두르다가 국민들을 문자그대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게 하였읍니다.
이렇게 하여 장군은 자신이 규정한 차기정권 인수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장군, 한일회담은 왜 이렇게 비밀이 많습니까? 주권자는 누구이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서야 됩니까? 이왕 말이 났으니 말입니다만, 왜 미국의 원조나 대한정책에 대하여서는 그토록 비판적이면서도, 우리를 36년동안이나 노예상태로 얽매어 둔 일본에 대하여서는 그토록 호의 호감을 가지고 대합니까?
그리고 군인은 국가의 간성이요, 왜적에 대한 방패이거늘 군인이 국방에보다 정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충성에 보다 권력에 더 매력을 느낄때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2․27선서에 군의 정치적 중립과 불관여를 국민앞에 맹세하였음은 참으로 청사에 길이 빛날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불과 몇주일 후인 3․16에 무참히도 짓밟히고야 말았읍니다. 그뿐입니까. 3월 22일군비상 지휘관회의는 우리 국군사상 최대오점을 찍어놓았읍니다.
도대체 군지휘관이란 (상부명령에 추종한 각급지휘관의 책임은 아님)군내에서 군사적대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정치적대표는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직이전의 일입니다. 그것은 곧 자유진영의 일환으로서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반동태세를 재정비강화하겠다는 혁명공약의 위배는 물론 군인으로서의 양심조차 의심케 하는 짓입니다.
장군은 3․16성명에서 2․27선서를 번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로서 쿠데타음모사건, 징계의혼란, 경제질서의 회복등 세가지를 들었는데 그 첫째 이유인 쿠데타사건만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혁명세력안에서 일어난 자중지란이므로 더이상 논거할 것이 못되며 다음 두번째의 정계혼란 역시 장군이 자신의 거취를 불투명하게 한데서 초래된 자작지얼일 뿐만아니라 장군 자신이 지시하여 만든 소위 범국민당(자민당)이라는 것까지 오늘날 정국의 난맥에 한몫 단단히 끼어 와글거리고 있으니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끝으로 세번째 이유인 경제사정은 호전되기는 커녕 이제 아주 질식상태에 빠지고 말았은 즉 2․27선서를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는 이유는 객관적 타당성을 상실하고 말았읍니다.
따라서 이제 남은 길은 한시바삐 물러가는 것 밖에 따로 없는 줄 압니다. 혁명이념을 어기면서 혁명과업완수를 위함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사리에 맞을리 없읍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고 또 충고하고싶은 것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망집을 버리고 번연개오, 장군자신의 거취를 뚜렸이 밝힘이 군인으로서 취할 바 태도요, 혁명자로서의 박장군이 영원히 사는 길이며, 군을 사랑하는 길이며 국가에 충성하는 길인 것입니다. 만일 장군이 그래도 끝끝내 그 자리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선 선거관리가 공명하게 될지가 무엇보다도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국란을 타개하는데 최선의 방법은 장군의 2․27선거 준수요, 그렇지 못하면 즉시 하야하는 일입니다.
일언이폐지하면 양자택일밖에 딴 도리가 없읍니다. 장군이 출마하지 않고 깨끗이 물러설때, 비오는 날 방안에서도 우산을 받았다는 맹사성정승의 시조는 『강호에 여름이 드니 초당에 일이 없다, 有信한 江波는 보내느니 바람이라, 이 몸이 서늘하옴도 공약이행이샷다』고 고쳐읊어질 것이며, 반면 끝끝내 이 직언을 물리치고 출마한다고 하면 이 사람 송요찬은 만학이나마 조국의 민주주의수호를 위하여 어떠한 형국의 길이라도 걸어가야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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