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중앙통신」부책임자라고 하는 이수근씨가 22일 저녁 판문점을 통해 극적으로 공산통치 탈출에 성공했다는 보도는, 실로 우리에게 가지가지의 감회를 일깨운다.
그것은, 어느 한사람의 북괴간부가, 자유가 무엇이냐 공산주의가 무엇이냐 사상이 무엇이냐 정치는 또 무엇이냐에 대해 개인적으로 용기있는 해답을 시도했다는 사실보다, 국가적으로 국토분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한번 끔찍히 실감하게 만드는 사건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아직 탈출한 이씨 자신의 자세한 동기 등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있기는 하나, 우선 “자유가 그리웠소” “이 감격을 말로는 못해요”하는 따위의 몇마디로 보아, 정부나 여야당의 대변인들이 말하듯 “공산학정이 얼마나 가혹할 것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산증거”로서 “그 자유에의 의지와 용기있는 행동을 높이 찬양”하는데, 우리도 뒤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이씨의 탈출을 계기로 한걸음 나아가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북괴의 그서슬이 퍼런 언론기관의 간부가 못배겨나는 그런 북한에, 얼마나 많은 동포가 살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이씨보다 훨씬 더 부자유스러운, 따라서 자유가 더욱 간절할 사람이, 언제까지 견딘다는 기한도 뚜렷하지 않은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씨 사건을 놓고 그가 두고 온 가족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가 하는데, 그 가족이 당할 것과 같은 고초는, 해방후 줄잡아 5백만이나 된다는 남하동포의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하나같이 당하고 있는 고초와 같은 것이리라고 짐작한다면, 끔찍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가지 이번 월남한 이씨의 경우, 그의 간단한 경력이 일러주는 것은 그가 자유세계에서의 생활을 한번도 못해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40대의 간부급이 그러할때 , 지금 자라고 있는 다음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젠가는 와야할 통일을 생각하면 어떤 대화가 그때 가능할까, 역시 기막히는 일의 하나다.
이렇게 생각해 나가면, 이씨의 이번 탈출은 한편으로, 자유와 공산주의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주는 행동임이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통일과 관련하여 하나의 새삼스러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없지가 않다.
이씨의 용기있는 자유에의 탈출을 우리는 환영하는 동시에, 그가 남겨두고 온 가족을 포함한 많은 동포, 탈출을 위한 판문점에의 접근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동포들의 탈출까지를 지향하지 않고서는 환영의 참뜻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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