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 지식인에 대한 문의가 사회문제의 한 면으로 대두하기는 작금에 시작된 바가 아니나 종래에 있어서는 주로 경제적 의미에서 논의된 데 불과하고 현관계에 있어서와 같이 급박한 정치적 임무를 띠고 객관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었었다. 지식인의 사회적 존립으로서의 종래의 특징은 그 소극적 생활에 있었던 것이나 몰락의 현단계에 봉착한 그들은 국면전향의 당면적 혈로(血路)로서 팟쇼적 경향으로 흘러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식인의 팟쇼화에 대해서는 대략 그 경향을 세 파로 분류할 수 있느니 첫째는 행동주의요, 둘째는 지식지상주의(知識至上主義)요, 셋째는 사이비적 좌익주의이다. 행동주의는 지식인을 역사의 발동기로 간주하여 역사의 발전은 지식인의 지도적 지배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며 지식지상주의는 고답적 낭만주의와 밀접한 결탁을 맷고 있는 패배주의적 주장이며 사이비적 좌익주의는 좌익적 언사를 구사함으로써 현상의 본질을 왜곡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2.
이상 세 가지에는 얼마 정도의 차별과 대립이 있기는 하나 그 차별성은 그들의 능동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분업적 영위(營爲)에 다름 아니며 실은 동일한 목표와 지식인을 일련의 독자적 「계층」으로 가장하려는 공통된 의도 위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인간이 일정한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소득과 소유원천의 집단적 공통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이해관계가 불일치한 지식인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바 사회적 생산의 체제하에서 체결된 유기적 집단이 아닌 이상 지식인과 「계급」과는 계열이 다른 별개의 범주이다. 근세초기를 회고컨대 당시의 지식인은 확실히 어느 의미로 역사발전의 지도자이었다. 이미 장기간 동안에 양성된 항쟁의 물질적 가능성의 제조건하에서 그들은 신흥 불죠아지-의 일익(一翼)으로 봉건적 질곡을 박차고 자유의 현실을 전취하기 위하여 용감히 싸운 것이다. 이는 지식인의 독자한 의존성을 입증하는 것이로되 또한 그들이 얼마나 진보적인 자유의 사도(使徒)였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3.
그러나 현단계에 있어서의 지식인의 팟쇼화는 근세초기의 진보적 노력과는 천리의 구거(溝渠)를 가진 것으로서 그것은 자유를 위한 노력이 아니고 자유의 부정을 위한 노력이며 독자적 주장을 표방함에 의하여 지식인의 역사적 능동성을 강조함은 철두철미 과학과 문화 등의 차별성을 말살하고 나아가서는 일체의 신흥문화와 신흥운동에 대한 부정적 기도인 반면에 그는 특정계급의 진부한 반대문화를 그 문화의 와중에서 구출하려는 피상적 노력에 불과하다. □□에 치열하여 마지않는 지식인의 팟쇼화는 물론 그 자신의 일정한 필연적인 물질적 사회적 원인에 의거한 것이기는 하나 물질적 사회적 원인에 의거한 사회현상은 모두 역사적인 것이 아니오 역사적인 것은 반드시 그대로 논리적이 되는 것은 아니니 현재의 결정적 단계에 처하여서는 부정의 부정을 □□하는 것만이 오직 역사적 정신적 통일의 진로를 추진하는 것이오 □□되어가는 부정의 역사적 과정에 맹종하는 것은 바로 역사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반동적 이용에 제공하는 변용의 우(愚)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家族主義를 打破하라 - 『조선일보』1934.1.3 (0) | 2007.02.23 |
---|---|
「工業朝鮮」과 資本家 - 『조선일보』1935.1.30 (0) | 2007.02.21 |
朝鮮에 志願兵制度實施 -『조선일보』1938.1.18 (0) | 2007.02.21 |
國民精神總動員運動의 眞髓 -『매일신보』1939.5.28 (0) | 2007.02.21 |
學徒動員體制確立 -『매일신보』1943.6.27 (0) | 2007.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