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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수학과 치매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2. 11. 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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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1. 08

 

#오래된 농담 하나. 쥐를 잡으려면 쥐가 몸에 좋다는 소문을 내면 된다. 그러면 보신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쥐를 씨까지 말려버릴 거라는.

 

#SK 와이번즈 신영철 사장은 내년 시즌 관중 동원 목표가 ‘100만명’이라고 선언했다. 2년 연속 100% 증가다. 평균 관중 2만명이다. 허황된 꿈? 불가능은 없지만 쉽지는 않다.

 

평균 관중 2만명은 프로야구의 터닝 포인트다. 1년에 63번이나 2만명을 모을 수 있는 이벤트라면 입장료 수익보다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경제가 열린다. 3만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야구 선수가 상대팀의 투수 A와 대결할 때 안타를 칠 확률은 0.2이고, 투수 B와 대결할 때 안타를 칠 확률은 0.25이다. 한 경기에서 이 선수가 투수 A와 2회 대결한 후 투수 B와 1회 대결한다면, 3회의 대결 중 2회 이상 안타를 칠 확률은? 이것은 1998년 수학능력평가 수리·탐구영역 인문계 24번 문제였다.

 

종합하자면, SK가 100만명을 모으기 위해서, 야구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야구를 알면 수학을 잘한다”는 소문을 내면 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보신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그런데, 이게 빈말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통계의 역사를 다룬 책 ‘숫자 게임(the numbers game)’에 따르면 초창기 야구 통계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궤도를 계산하는 이들이었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일하는 이도 있었다.

 

유럽에서 야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야구 기록지를 한 아름 들고 유럽 근무에 나섰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Stat-O-magic이라는 야구 게임이었다. 주사위를 던지며 야구 시즌을 치르는 이 게임은 어린 시절부터 이들을 숫자에 강한 기술자로 만들었다. Stat-O-magic의 열혈 팬이었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야구 통계를 분석해서 ‘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는 진화의 방향이 종의 안정성을 지향한다는 것도 설명했다. 야구는 진화론의 증거가 됐다.

 

타율을 계산하는 일은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소숫점 이하 3자리까지 구하는 일은 수학적으로 만만치 않다. 야구를 잘 알면 수학을 잘하게 된다. 허풍만은 아니다.

 

사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미 준비에 들어갔다. 새해 예산에는 어린이용 야구책 발간비가 잡혀 있다. 야구 기술 교본이 아니라 야구 수학 관련 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야구를 애들만 보라고? 사실 노인들에게 더 좋다. KBO 이상일 본부장은 노인들의 치매 방지를 돕는 새롭고 간단한 형태의 기록지를 연구 중이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손잡고 야구장에 와 김재현의 최근 5경기 타율 및 출루율을 계산한다. 100만명이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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