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1. 15
지난해 12월 대만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이 열렸다. 엔트리에 포함된 포수는 3명. SK 박경완, 삼성 진갑용, LG 조인성이었다. 이들이 최고를 다툰다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엔트리 제한 때문에 한 명이 빠져야 했다. 고민할 만한 일이었다. 엔트리 결정일을 하루 앞둔 저녁, 유승안 기술위원이 이들의 볼 배합을 분석했다. 3명 모두 일장일단이 있었다.
조인성은 속전속결 스타일이었다. 틈만 나면 빠르게 승부한다. 이 때문에 가끔 유리한 카운트에서 큰 걸 허용하기도 하지만 상대의 흐름을 끊어 바꾸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허를 찌르는 승부는 상대에게 2중의 피해를 줬다. 물론 조인성의 어깨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강하다.
박경완은 ‘돌다리도 두드리는 스타일’이다. 유위원에 따르면 “지금? 지금? 하는데도 안 들어온다. 상대가 말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대신 공격적인 투수라면 조금 답답할 수도 있다. 투구 수가 늘어난다는 단점도 있다.
진갑용은 조인성과 박경완 사이에 있다. 가장 스탠더드한 스타일이다. 정석대로, 교과서대로 볼 배합이 이뤄진다. 가장 안정적이기도 하다. 반면 그 안정성이 상대의 변칙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유위원은 “감독관으로 뒤에 앉아 있다보면 십중팔구 내 생각하고 비슷하게 공이 온다”고 했다.
결국 컨디션이 좋지 않던 진갑용은 탈락했고 대만전은 박경완, 일본전은 조인성이 마스크를 썼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경기에 누구를 앉혀야 할까. 대개는 박경완을 꼽는다. 큰 경기일수록 실수를 줄여야 한다. 박경완은 지난 시즌 SK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코나미컵 첫 판도 승리로 만들었다.
박경완의 볼 배합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하다. 초구를 시험 삼아 던져 상대를 파악한 뒤 이후 볼 패턴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추론한다. 6구째가 결정구라면 5, 4, 3, 2, 1구를 거꾸로 계산해 나가면서 볼 배합을 결정한다. 그래서 1구는 2구의 목적구고, 2구는 3구의 목적구다. 그리고 나머지 모두는 6구를 위한 사전 포석이다. 함정을 만들어 놓고 치밀하게 계산해 움직이는 스타일. 상대가 피곤할 수밖에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현대 매각을 위해 세 타자를 상대했지만 단 1명도 잡아내지 못했다. 볼 배합이 지나치게 단순했다. 그저 사인을 들키지 않으려는 데만 집중했다. 성급한 직구는 장타를 허용했다. STX 때도 승부를 서둘렀지만 STX는 이후 유인구에는 꼼짝도 안했다. KT를 상대로는 도망가는 피칭으로 일관했다. 볼카운트가 몰린 상태에서 던진 마지막 직구는 끝내기 홈런을 맞기 딱 좋았다.
현대 매각은 한국시리즈보다 훨씬 큰 경기였다. 결정구를 정해두고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볼 배합이 아쉬웠다. 박경완은 그래서 훌륭한 포수인지도 모른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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