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베이스볼 라운지] 복수정답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2. 11. 19. 21:15

본문

2007. 12. 25

 

대학 수학능력시험 한 문제의 답이 2개가 됐다. 하나만 맞다고 했다가 둘 다 맞다고 했다. 이 때문에 상황이 굉장히 복잡하게 됐다. 혼란스럽기도 하다.

 

정답을 두고 벌이는 고민은 야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SK와 두산이 치열한 혈전을 펼쳤던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도 ‘정답’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3차전에서 ‘출제’됐다. SK가 7-0으로 앞선 6회 김재현의 타석 때 두산 투수 이혜천이 와인드업을 하자 3루주자 정근우가 재빨리 스타트를 끊었다. 포수 채상병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공은 왼손타자 김재현과 채상병 사이로 빠져 백네트까지 굴러갔다. 덕분에 2루주자 조동화까지 홈으로 파고들었다. 점수는 9-0.

 

7-0 상황에서의 홈스틸 시도가 비겁한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기록원이 바빠졌다. 어떤 것이 ‘정답’이냐는 문제다. 홈스틸이었다면 2004년 한국시리즈 7차전 삼성전에서 현대 전준호가 기록한 이후 역대 2번째 한국시리즈 홈스틸 기록이었다.

 

이날 공식기록원이었던 김태선 기록원은 정답을 ‘패스트볼’로 기록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김상영 기록위원장은 기자를 만나 “정근우의 득점을 패스트볼이 아니라 홈스틸로 수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패스트볼은 수정되지 않았다. 정답이 오락가락했다. 그리고 정답은 ‘패스트볼’로 굳어졌다.

 

규정에 따르면 패스트볼이 맞다. 야구기록규칙 10.08 보2에 따르면 홈스틸의 경우 ‘폭투 또는 패스트볼에 의하지 않고 그 주자가 득점을 할 수 있었다고 기록원이 판단했을 경우에 한해 그 주자에게 도루를 기록한다’고 규정돼 있다. 채상병이 공을 제대로 잡았다면 정근우는 아웃타이밍이었다.

 

자, 정답은 패스트볼. 논란은 없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사실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날 이혜천이 던진 공은 김재현의 팔을 스쳤다. 느린 장면으로 보면 공의 각도가 조금 변했다. 그래서 채상병이 공을 놓쳤다. 심판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면 정답에 대한 논란의 여지도 없었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몸에 맞은 공이 정답. 9-0이 아니라 7-0에 1사 만루. 혹시 그랬다면 시리즈의 방향이 바뀌었을까.

 

하긴 야구에서 정답과 진실 사이에는 원래 거리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올림픽예선 일본전에서 ‘위장 오더’로 곤욕을 치렀지만 2001년 대만에서 열린 야구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은 미국 대표팀의 이중 오더에 당했다. 미국 대표팀 감독은 우리 오더를 슬쩍 보고 왼손 이혜천이 선발임을 확인하더니 미리 준비한 둘 중 왼손 선발 상대용 오더를 내밀었다. 이거야 말로 ‘복수정답’? 우리측의 항의에 미국 대표팀 감독은 “원래 이게 야구다”라며 뻔뻔함을 유지했다. 그때 그 미국팀 감독은 바로 올해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