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3. 01.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또 꼴찌 할 거라고 말했겠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매번 여자프로농구의 하위권을 도맡았던 팀이 있었다. 네 시즌 연속 최하위권에 머무르며 올라서지 못할 거라고 저평가됐던 팀, 바로 우리은행이다. 그러나 그들은 2012-2013시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통합우승을 차지한다. 단일리그로 진행된 2007-2008시즌 이후 ‘레알’ 신한은행만이 보유했던 영광을 직전 시즌 꼴찌가 해낸 것이다.
우리은행은 2012-2013시즌 24승 11패를 기록하며 승자승 원칙에 따라 승률이 같은 신한은행을 누르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직전 시즌에서 7승 33패를 거뒀던 팀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성적이었다. 언론은 ‘신데렐라 스토리’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성공의 시작은 위성우 감독 선임이었다. 신한은행에서 코치로 통합 6연패를 이뤘던 그가 우리은행의 러브콜을 받고 전주원, 박성배 코치와 함께 새 판을 짜게 된 것이다.
정장훈 우리은행 사무국장은 “위성우 감독은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팀에는 박혜진, 이승아 등 보석이 되지 못한 선수들이 많았고, 제 기량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위성우 감독이라면 그들을 올스타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선임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고 밝혔다.
부임 후, 위성우 감독은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먼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을 고강도 훈련으로 단련시켰다. 은퇴 직전, 위성우 감독과 함께한 김은혜 KBSN 해설위원은 “(위성우)감독님이 부임하신 후, 2일도 안 돼서 휴가 중인 선수들에게 몸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하셨다. 복귀한 후, 곧바로 여수전지훈련을 갔는데 정말 지옥과 다름이 없었다(웃음)”며 “오전 운동을 하면 12시 정도에 끝이 났다. 잠깐 쉬고 나면 오후 운동을 했고, 저녁을 먹으면 야간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즌이 다가올 무렵, 선수들 사이에선 이렇게 고생해놓고 성적 못 내면 억울할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위성우 감독은 신참과 고참 및 코칭스태프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모두가 고생하고 노력하는 ‘One Team’을 원했던 것. 박성배 전 우리은행 코치는 “감독님께서 야간 훈련을 처음으로 주문하신 날, 대부분의 고참 선수들이 코트에 나오지 않았다. 코치들도 전부 코트에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웃음). 다음 날이 되고 감독님은 고참 선수들에게 훈련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다. 선수들은 두 손이 닳도록 빌었고, 다음부터는 모든 선수들이 오전, 오후, 야간 훈련에 참가하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은행의 문제점은 확실했다. 에이스의 부재, 승부처에서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 4쿼터에 역전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성우 감독은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의 나약한 마음을 지웠고, 임영희라는 확실한 에이스를 만들었다.
박성배 코치는 “비시즌 연습경기 때부터 우리는 정규리그를 치른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감독님은 모든 경기에 이기길 원했고, 과정이 안 좋으면 승리를 해도 혼을 내셨다. 우리은행의 최대 약점은 에이스의 부재였는데 (임)영희를 지목하시면서 모든 마무리를 맡기셨다. 또 고참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며 경기를 스스로 마무리하는 걸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고,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은행의 2012-2013시즌 첫 상대는 직전 시즌에서 정규리그 2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빛나는 KDB생명(현 OK저축은행)이었다. 신정자를 중심으로 이경은, 한채진, 조은주 등 독수리 5형제가 건재했던 강팀이었다. 아무리 고된 훈련을 치렀더라도 실전은 다른 법. 모든 이들이 KDB생명의 승리를 점쳤고, 이를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확실히 달라졌다.
우리은행은 화끈한 몸싸움, 철저한 2대2 플레이는 물론 리바운드에 대한 열정까지 더하며 KDB생명을 65-56으로 꺾었다. 임영희(19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와 양지희(19득점 6리바운드 2스틸), 박혜진(16득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 4스틸)이 맹활약한 결과였다.
본지 편집위원인 스포츠타임스 홍성욱 기자는 “KDB생명은 신한은행의 대항마로 꼽힐 정도로 강팀이었다. 직전 시즌에서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고, 선수들 모두 짜임새가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에 패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개막 이전에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곧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 대단했다”고 기억했다.
더 큰 이변은 11월 10일에 나타났다. 최강으로 군림하던 신한은행을 74-52로 격침 시킨 것이다. 홍성욱 기자는 “당시 많은 기자들이 부산에 모여 있었다. 한국, 일본, 대만 야구의 챔피언들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은행이 신한은행을 크게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모두 농구를 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놀라운 사실이었고, 신한은행이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무수한 위기가 있었지만, 우리은행은 선두권을 유지해 나갔다. ‘슈퍼 에이스’ 티나 톰슨의 합류로 막강 전력을 과시했고, 결국 신한은행의 통합 7연패 꿈을 산산조각냈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힘들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삼성생명, 신한은행에 비해 큰 무대 경험이 떨어진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홍성욱 기자는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성생명의 우승을 점쳤다. 김한별(당시 킴벌리 로벌슨)과 박정은, 이미선 등 경험과 실력을 모두 갖춘 이들이 있었으니까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우승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과거보다 현재를 바라봤을 때, 우리은행의 전력이 더 좋았고, 3전 전승 우승을 예상했다”며 “후일담이지만, 우리은행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1차전 5분을 뛰고 난 후, 첫 작전타임에서 선수들 모두가 우승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막강했던 삼성생명은 3전 전승으로 누르고, 통합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3경기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격차가 날 정도로 압도했다. 임영희는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두 MVP에 선정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기도 했다.
직전 시즌, 최하위권 팀이 별다른 전력 보강 없이 통합우승을 차지한 사례는 흔하지 않다. 모두가 리빌딩 시즌이라고 평가했지만, 그들은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이다.
김은혜 위원은 “신한은행이 터프한 수비를 바탕으로 6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면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팀들과 경기를 하면 파울성 플레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정도로 강한 훈련을 많이 했고, 실전에서 위력을 보였다”며 “정말 절실했던 것 같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힘든 훈련에 대한 결과를 내고 싶었다. 감독님도 ‘이번에 성적을 못 내면 나가겠다’고 하실 정도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만큼 절실했고, 그 마음이 선수들에게 전달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우리은행은 여전히 강력한 우승후보다. 처음보다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위성우 감독과 우리은행은 매해 지옥의 비시즌을 통해 선두권을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들에게도 새로운 대항마가 등장했다. 6년 전, 신한은행의 앞을 가로막았던 자신들처럼 KB스타즈가 올라선 것이다. 이미 정규리그 경쟁에선 우리은행이 한발 물러난 상황. 하나, 챔피언결정전이라는 마지막 무대를 남겨 두고 있다. 우리은행의 천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챔피언의 등장일까. 어느 누가 승리하더라도 역사는 새로 쓰이게 된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점프볼
[타임머신] '언더 독 장인' 정상일 감독의 파란만장한 중국 이야기 (0) | 2022.11.10 |
---|---|
[타임머신] 34년 전, 세계 정상을 바라본 12명의 당찬 소녀들 (0) | 2022.11.09 |
[타임머신] '르브론즈' 절반의 성공과 실패, 미국 드림팀Ⅶ (0) | 2022.11.09 |
[타임머신] "어서 일어나" 美 드림팀의 꿈을 깬 남자들 (0) | 2022.11.09 |
[타임머신] 우스꽝스러운 포즈, 성공률은 준수! ‘언더핸드 자유투’ (0) | 2022.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