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8. 09.
1992년 첫 결성된 드림팀Ⅰ을 시작으로 세계농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2000 시드니올림픽까지 그들은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고,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곧 깨지고 말았다.
▲ 드림팀을 두 번이나 울린 남자, 마누 지노빌리
남미는 물론 유럽까지 제패한 젊은 유망주 지노빌리. 그는 1998년 그리스세계농구선수권대회부터 2016 리우올림픽까지 무려 18년간 아르헨티나의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다. NBA 이력까지 적으면 이 글이 오로지 지노빌리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던 그는 국제대회에서도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르헨티나는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지역 예선인 남미 대회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농구선수권대회, 올림픽에서 매번 최고 성적을 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노빌리가 있었다.
지노빌리는 성인으로서 처음으로 밟은 국제무대, 그리스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평균 7.8득점 2.0리바운드 1.2어시스트로 8위를 이끌었다. 4년 뒤, 2002 미국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선 ‘황금세대’라고 할 수 있는 파브리시오 오베르토, 루이스 스콜라, 안드레스 노시오니 등과 함께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노빌리는 이 대회에서 평균 14.1득점을 기록하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매 경기 승승장구했지만, 가장 눈에 띈 건 드림팀Ⅴ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의 안방에서 말이다.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전승 행진을 이어가던 드림팀Ⅴ는 지노빌리와 노시오니의 투맨 쇼에 힘을 잃으며 80-87로 패했다. 당시 지노빌리는 15득점 3어시스트 2스틸로 드림팀Ⅴ의 허술한 수비를 마음껏 허물었다. 이 승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최고를 꿈꾸던 드림팀의 전승 역사가 깨진 날이었고, 루벤 마그나노 감독과 지노빌리를 중심으로 한 아르헨티나의 ‘황금세대’가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었다. 비록 결승에서 만난 유고슬라비아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아르헨티나, 그리고 지노빌리는 최고로 평가받았다.
이후 NBA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이름을 날린 지노빌리는 2년이 지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드림팀의 꿈을 무너뜨렸다. 그것도 자신의 팀 동료이자, NBA 최고의 선수였던 팀 던컨이 포함된 드림팀Ⅵ를 말이다.
미국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의 참사 이후, 드림팀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국가대표 차출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고, NBA 시즌을 위한 휴식을 이유로 고사했다. 당시 큰 문제였던 그리스 테러 위협 역시 최정예로 꾸리지 못한 이유가 됐다. 팀 던컨, 앨런 아이버슨, 스테판 마버리, 그리고 2003 신인 드래프트 3인방(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의 등장으로 구색은 맞췄지만, 여전히 약하다는 인상을 벗겨내지 못한 이유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마그나노 감독이 또 한 번 지휘봉을 잡으며 그들만의 전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탄탄한 수비, 체계적인 속공 전술, 더불어 볼 없는 움직임에 대한 강조는 마그나노 감독의 농구 철학이자, 아르헨티나가 2000년대 세계농구의 강자로 올라서는 데 있어 크게 일조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지노빌리는 전과는 비교하기 귀찮을 정도로 엄청난 선수가 되어 있었다.
조별 예선은 다소 불안했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초접전을 펼친 뒤, 83-82로 간신히 첫 승을 신고했다. 당시 지노빌리는 27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원맨쇼를 펼치며 조국의 승리를 책임졌다. 그러나 스페인(76-87)에 무기력한 패배를 맛봤고, 이탈리아(75-76)에 아쉬운 1점차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중국과 뉴질랜드를 잡고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했지만, 진출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했다.
8강에서 만난 그리스를 무너뜨린 아르헨티나는 4강에서 드림팀Ⅵ와 만나게 된다. 당시 드림팀Ⅵ의 사정도 좋지는 못했다. 첫 경기였던 푸에르토리코 전에서 73-92로 대패했고, 리투아니아에 90-94로 패했다. 나란히 4승 2패를 거둔 두 팀의 만남은 뜨거웠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드림팀Ⅵ을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팀이었다. 지역방어에 취약했던 드림팀Ⅵ은 아르헨티나의 밀집 수비를 전혀 뚫어내지 못했다. 지역방어를 깨기 위해선 3점슛이 중요했는데 전반까지 드림팀Ⅵ이 성공한 건 단 1개. 그것도 종료 직전, 제임스가 성공한 것이 유일했다. 파울 트러블에 고전했던 던컨, 슈터가 없었던 드림팀Ⅵ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르헨티나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노빌리는 그런 드림팀Ⅵ을 제대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드림팀Ⅵ이 이날 성공한 3점슛은 총 3개. 그러나 지노빌리는 4개를 성공시켰다. 야투 성공률도 대단했다. 13개 시도 가운데 9개를 성공했고, 32분여 동안 29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노시오니와 스콜라, 알레잔드로 몬테치아까지 합세한 아르헨티나는 결국 89-80으로 드림팀Ⅵ을 꺾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이탈리아와의 리턴 매치를 가졌고, 84-69로 화끈한 복수에 성공했다. 지노빌리는 이 경기에서 16득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조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가져왔다.
첫 드림팀 결성 후, 그들이 패한 건 총 7차례다. 그중 아르헨티나는 유일하게 2차례 승리를 거뒀고, 지노빌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마누 지노빌리 vs. 드림팀
1998 그리스세계농구선수권대회_6득점 3리바운드 1어시스트 1스틸 L
2002 미국세계농구선수권대회_15득점 1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 W
2004 아테네올림픽_29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1스틸 W
2006 일본세계농구선수권대회_10득점 3리바운드 1어시스트 L
2008 베이징올림픽_2득점 L
2012 런던올림픽_18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1스틸 1블록 L
2016 리우올림픽_14득점 3리바운드 7어시스트 1스틸 L
▲ 드림팀을 떨게 한 스나이퍼,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시드니올림픽 4강, 드림팀Ⅳ는 순간 패배의 그림자에 갇히고 만다. 사상 첫 패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섭도록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한 남자에 공포감까지 느끼고 말았다. 무려 27득점을 퍼부으며 드림팀Ⅳ을 압박한 주인공은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비록 마지막 ‘빅 샷’이 빗나가며 결승 티켓을 놓쳤지만, 4년 뒤, 드림팀의 꿈을 한 차례 무너뜨리는 소나기 3점쇼를 펼칠 남자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던 야시케비셔스는 미국으로 넘어가 농구 명문 메릴랜드 대학에서 미국농구를 느끼게 된다. 이후 스페인, 이스라엘 등 유럽 최고 명문 리그에서 활약하며 리투아니아의 농구 스타가 됐고, 얼굴이 됐다.
국제대회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다. 리투아니아는 야시케비셔스와 함께한 15년간 유럽의 강호, 세계의 강자로 올라섰다. 시드니올림픽에선 동메달, 아테네올림픽 4위, 베이징올림픽 4위 등 그 누구도 그들을 쉽게 보지 못했다.
수십년의 농구 인생 중 야시케비셔스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바로 아테네올림픽에서 만난 드림팀Ⅵ과의 예선전이었다. 라무나스 시스카우스카스, 아르비다스 마시자우스카스와 함께한 그는 앙골라, 푸에르토리코, 그리스를 차례로 격파하며 3연승을 이끌었다. 네 번째 상대로 만난 건 드림팀Ⅵ. 푸에르토리코에 충격 패한 그들은 겨우 재정비에 성공했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만난 리투아니아, 그리고 야시케비셔스는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며 드림팀Ⅵ을 무너뜨렸다.
전반까지 49-44로 밀리던 리투아니아는 야시케비셔스의 3점쇼로 흐름을 뒤바꿀 수 있었다. 야시케비셔스는 ‘3점슛의 달인’ 마시자우스카스의 부진 속, 에이스를 자처하며 마음껏 드림팀Ⅵ의 수비를 흔들었고, 픽&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외곽 수비를 허물었다. 특히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긴 시점부터 미친 듯이 3점슛을 성공, 경기를 뒤집은 건 드림팀Ⅵ의 입장에선 타노스를 처음 본 어벤저스와 같았다. 그가 이날 성공한 3점슛 개수는 무려 7개. 28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대어를 낚았다.
경기를 조율해야 하는 포인트가드였음에도 야시케비셔스의 공격 능력은 유럽 최고로 평가받기도 했다. 비록 동메달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드림팀Ⅵ에 분패했지만, 야시케비셔스의 공포는 여전했다. 이후 2012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리투아니아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지노빌리와 함께 드림팀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남자로 남고 있다.
※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vs. 드림팀
2000 시드니올림픽 예선_9득점 2리바운드 6어시스트 1스틸 L
2000 시드니올림픽 4강_27득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 L
2004 아테네올림픽 예선_28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 1스틸 W
2004 아테네올림픽 동메달 결정전_17득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 L
2012 런던올림픽_8득점 1리바운드 6어시스트 1스틸 L
▲ 드림팀Ⅶ의 정상 탈환 의지를 꺾은 ‘베이비 샤크’ 소포클리스 쇼르차니티스
과거 드림팀만큼은 아니었지만, 제임스와 앤서니, 웨이드가 주축이 된 드림팀Ⅶ은 승승장구하며 2006 일본세계농구선수권대회 4강에 올랐다. 그들의 상대는 역시 무패 행진을 하고 있던 그리스. 화려한 공격을 자랑한 드림팀Ⅶ과 유럽 최고의 방패로 불리는 그리스의 대결은 많은 이들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스에 비밀 병기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단순 기록으로만 보면 이날 최고의 수훈선수는 단연 바실리스 스파눌리스였다. 드림팀Ⅶ의 앞선을 마음껏 휘저으며 22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선수는 스파눌리스가 아니다. 208cm의 거구, 카메룬 출신의 소포클리스 쇼르차니티스의 강렬한 인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실 쇼르차니티스는 일본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그리 많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카타르, 브라질과의 경기에선 아예 출전하지 못했고, 리투아니아, 호주 전에서도 총 9분 출전에 그쳤다. 반전의 계기는 터키 전부터였다. 10분이 조금 넘는 출전 시간에도 두 자릿수 득점을 해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엄청난 파워를 바탕으로 한 골밑 플레이는 알고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야오밍이 버티고 있던 중국 전에서는 15분 출전해 14득점이라는 최고의 효율을 뽐내기도 했다.
드림팀Ⅶ은 드와이트 하워드를 제외하면 정통 센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크리스 보쉬, 브래드 밀러가 있었지만, 골밑에서의 위력은 비교적 떨어졌다. 상성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만난 그리스는 그들에게 있어 버거운 상대였고,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리스는 철저한 픽&롤 플레이로 드림팀Ⅶ의 취약 부위를 마음껏 헤집었다. 2년 전, 지역방어에 고전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철저한 패스 플레이, 무려 62.5%를 기록한 정확한 야투 성공률은 막강 화력을 갖춘 드림팀Ⅶ도 버텨내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입된 쇼르차니티스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파워를 앞세워 드림팀Ⅶ의 수비를 무너뜨렸고, 17분여 만에 14득점을 기록했다. 접전 상황에서 나온 쇼르차니티스의 폭발력은 큰 힘이 됐고, 대접전 끝에 드림팀Ⅶ을 꺾는 원동력이 됐다.
예상하지 못한 쇼르차니티스의 활약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설마 했던 순간이 현실이 됐고, 쇼르차니티스는 샤킬 오닐의 플레이를 연상하게 했다고 해서 ‘베이비 샤크’로 불리게 됐다. 스페인과의 결승에선 7분여 출전에 그치며 준우승에 멈췄지만, 재기를 꿈꾸던 드림팀Ⅶ을 침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사실상의 승자와 같았다.
이후 2010 터키세계농구선수권대회까지 함께한 쇼르차니티스는 이후 국가대표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현역 생활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19-2020시즌 그리스 2부리그 AO 로니코스에서 뛸 예정이다.
※ 소포클리스 쇼르차니티스 vs. 드림팀
2006 일본세계농구선수권대회_14득점 1리바운드 W
2008 베이징올림픽_3득점 1리바운드 1스틸 L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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