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2. 14
허훈의 어시스트 동반 20-20은 KBL 출범 이래 처음으로 쓰여진 기록이다. 그러나 모든 지표에서 최초가 될 수는 없다. 그보다 더 먼저 20-20을 기록한 남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 KT의 에이스 허훈은 지난 9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5라운드 맞대결에서 24득점 3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허훈이 보인 퍼포먼스는 대단했다. 그러나 허훈의 20-20은 최초가 아니다.
KBL 역사상 20-20을 기록한 선수들은 많았다. 대부분 외국선수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보기 드문 기록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국내선수로 한정한다면 20-20은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를 쉽게 내릴 수 있다. 허훈까지 포함하더라도 불과 3명만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KBL 최초의 국내선수 20-20은 현재는 은퇴한 ‘하킬’ 하승진이 첫 기록 보유자다. 2015-2016시즌 마지막 정규경기였던 2월 21일, KGC인삼공사 전에서 24득점 21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이다.
당시 하승진은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존재였다. KGC인삼공사는 오세근과 김민욱, 찰스 로드 등을 앞세워 하승진을 막아보려 했지만 경부고속도로보다 더 시원하게 뚫리고 말았다. 더욱 드라마틱한 것은 하승진의 활약은 KCC의 승리로 이어졌고 이는 전신 현대 시절인 1999-2000시즌 이후 16년 만에 정규경기 1위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36승 18패로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와 동률이었던 KCC는 상대 전적에서 4승 2패로 앞서며 극적인 정규경기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6라운드 전승은 물론 무려 12연승을 달려 해낸 결과였기 때문에 더욱 뜻깊었다. 더욱이 하승진의 20-20 달성과 함께 겹경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하승진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이 좋은 기록과 좋은 성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 내게는 20-20만큼 정규경기 1위도 의미가 크다. 그동안 ‘KCC는 정규경기 1위를 하지 못한다’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고 꼭 정상에 서고 싶었다”라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하승진의 20-20은 단순히 221cm의 거대한 신장을 가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물은 아니다. 최악의 자유투 성공률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는 9번의 자유투 시도 중 무려 8번을 성공시킬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하승진 역시 “이렇게까지 자유투가 많이 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 모든 것이 높은 집중력 때문이다”라고 말할 정도.
한 가지 아쉬운 건 20-20에 대한 별도 시상이 없었던 만큼 하승진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2년간 침묵을 지켰던 KBL은 2017-2018시즌 오세근이 두 번째 20-20을 달성한 후 하승진 역시 기념상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과거 하승진은 이에 대해 물었던 기자에게 특별한 답변을 주지 않았지만 행동에서 아쉬움이 듬뿍 느껴졌다. 2017년 11월 1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오리온과의 경기 전 몸을 풀고 있었던 그는 이성훈 전 KBL 사무총장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루틴을 그대로 마친 뒤 시상에 응했다. 기념상을 받은 뒤 그대로 코트에 내려놓은 것 역시 자존심이 상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과 같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두 번째 국내선수 20-20 기록 보유자는 오세근이다. 2017년 10월 15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전자랜드 전에서 28득점 20리바운드 6어시스트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세웠다.
2016-2017시즌 통합우승 이후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한 오세근은 이미 7월에 출전한 2017 아시아컵에서 베스트5에 선정될 만큼 ‘건세근’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10월 14일에 열린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 리턴 매치에서 17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고 패했던 오세근은 두 번째 상대였던 전자랜드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당시 전자랜드는 정효근과 강상재 등 젊은 장신 포워드들을 대거 투입하며 오세근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제 막 성장기를 보내고 있었던 그들과 KBL 최정상급 센터로 군림하고 있던 오세근의 급은 차이가 컸다. 데이비드 사이먼과 함께 전자랜드의 골밑을 무차별 폭격했고 끝내 하승진에 이어 두 번째 대기록을 세우게 됐다.
오세근은 20-20 달성 이후 “대기록을 달성했는지 잘 몰랐다. 전날 삼성 전에서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승진이 형의 뒤를 이어 좋은 기록을 세워 기쁘다. 앞으로 더 나아가겠다”라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KBL은 오세근의 20-20을 기념하기 위해 별도의 시상을 준비했다. 2017년 10월 26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SK 전에 앞서 기념상을 전달한 것. 이후 최초의 기록자인 하승진에게도 기념상이 전달되며 축하했다.
아쉽게도 허훈의 어시스트 동반 최초의 20-20 기록은 따로 시상될 계획이 없다. 2018-2019시즌을 끝으로 외국선수의 전유물이 된 20-20에 대한 기념상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KBL 내부에서 허훈의 시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음에도 시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너무도 아쉬운 일이 되지 않을까.
허훈의 어시스트 동반 20-20 기록은 최초라는 것 이외에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현역 선수 중 가장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면서도 어시스트 능력 역시 최고라는 점이다.
역대 국내선수들 중 20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한 건 단 네 명뿐이다. 현역 선수로는 허훈이 유일하며 이상민, 주희정, 김승현(2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 KBL 통산 한 경기 20개 이상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
1위_김승현 23개/2005년 2월 9일 vs. 삼성
2위_허훈 21개/2020년 2월 9일 vs. KGC인삼공사
3위_김승현 20개/2005년 3월 5일 vs. KTF
3위_이상민 20개/2003년 12월 7일 vs. 전자랜드
3위_주희정 20개/2008년 11월 27일 vs. 오리온스
그러나 이 선수들이 모두 공격력이 뛰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이상민, 김승현은 정통 포인트가드에 가까웠고 주희정 역시 듀얼 가드보다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
단 허훈은 다르다. 현재 국내선수 득점 1위(15.4득점)는 물론 어시스트 역시 1위(7.2개)에 올라 있다. KBL 역사상 득점과 어시스트를 동시 석권한 이가 없는 만큼 그의 행보는 새로운 역사와도 같다.
흥행은 스스로 따라오는 게 아니다. 멋진 스토리 텔링은 물론 기록에 대한 후한 평가와 대우, 그리고 이에 걸맞는 스포트라이트가 따라와야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미 한 번 하승진의 사례로 시행착오를 겪은 KBL이 허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자료출처 : 점ㅍ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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