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01
KBL을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매 시즌 다양한 스타일의 외국선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내선수들에게 쉽게 찾아보기 힘든 화려한 플레이는 물론 색다른 헤어 스타일, 아파트 단지만 한 묵직한 몸매 등을 지켜볼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1997년 출범 이래 KBL 무대를 밟았던 외국선수들 중 강렬했던 첫인상을 심어준 이들을 되짚어보자.
▲ KBL 원년 득점왕이자 악동이었던 칼레이 해리스
※ KBL 커리어
1997시즌(원주 나래)_21G 32.2득점 3.0리바운드 5.6어시스트 1.7스틸
한국농구의 역사에 있어 외국선수들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1997시즌은 수많은 추억을 팬들에게 심어줬다. ‘테크니션’ 제럴드 워커, 기아 왕조의 마지막 불꽃을 함께 일으켰던 클리프 리드, 초대 외국선수상의 주인공 제이슨 윌리포드 등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추억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칼레이 해리스처럼 불꽃 같았던 선수는 없었다. 데뷔전에서 49득점을 기록하는 등 평균 32.2득점을 퍼부으며 최초의 득점왕이 됐다. 무늬만 포인트가드였던 그는 화려한 개인 기술을 뽐내며 코트를 휘저었고 급이 다른 득점 감각을 선보였다. 나래는 해리스와 윌리포드를 앞세워 초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꽃 같았던 플레이와 함께 성격 역시 불꽃 같았다. ‘독불장군’식 플레이가 대부분이었고 코칭스태프가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나래는 대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해리스의 방출을 고민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마지막까지 나래와 함께한 해리스는 이후 KBL과 연이 닿지 못했다.
▲ 역대 데뷔전 최다 득점의 기록 보유자 캔드릭 브룩스
※ KBL 커리어
2000-2001시즌(신세기 빅스)_41G 26.6득점 6.3리바운드 2.5어시스트 1.1스틸
2001-2002시즌(전주 KCC)_18G 19.0득점 5.2리바운드 3.2어시스트 1.6스틸
마이클 조던과 흡사한 외모를 지닌 캔드릭 브룩스는 시범경기 득점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남다른 공격력을 과시했다. 그의 위력은 데뷔전부터 120% 발휘됐다. 대전 현대를 상대로 52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93-81 승리를 이끌었다. 데뷔전 52득점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이다. 신세기는 브룩스의 활약으로 2000-2001시즌 5할 승률(23승 22패) 및 5위에 오르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상대 팀들의 집중 견제로 득점 1위는 아티머스 맥클래리에게 넘겨줬지만 그의 존재감은 모든 이들이 인정할 정도였다. 경기당 2.2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역대 처음으로 외국선수가 3점슛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KBL 커리어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2001-2002시즌 KCC 르나드 존스의 대체선수로 다시 KBL 무대를 밟았지만 ‘항명 파동’을 일으키며 중도 퇴출됐다.
▲ 플로터? 막슛? 엉성했지만 위력적이었던 데니스 에드워즈
※ KBL 커리어
2000-2001시즌(안양 SBS)_45G 33.4득점 8.9리바운드 4.0어시스트 1.4스틸
2002-2003시즌(울산 모비스)_52G 21.9득점 6.6리바운드 2.5어시스트 1.3스틸
무언가 이상하다. 엉성하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자세로도 경기당 30점씩을 넣어준다. 안양 SBS의 특급 외국선수였던 데니스 에드워즈의 이야기다. 레게 머리로 자신의 확실한 스타일을 고수했던 에드워즈는 KBL 초창기 대표적인 외국선수 중 한 명이었다. 192cm의 단신 빅맨으로 골밑에서의 위력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막슛’은 연신 림을 갈랐다. 에드워즈는 당시 “나는 슛쟁이는 아니지만 때를 기다려 득점할 줄 아는 선수다”라며 자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192cm의 단신 빅맨이 던지는 ‘막슛’에 모든 외국선수들은 휘청거렸다. 데뷔전에는 40득점을 퍼부으며 스타 탄생을 예고하기도 했다. 2000-2001시즌 평균 33.4득점을 기록한 에드워즈는 에릭 이버츠, 마이클 매덕스 등 걸출한 외국선수들을 제치고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울산 모비스에서 “1시즌 더!”를 외쳤지만 끝내 KBL과 이별하고 말았다.
▲ 일반 체중계는 감당할 수 없었던 남자, 나이젤 딕슨
※ KBL 커리어
2005-2006시즌(부산 KTF)_32G 19.0득점 15.9리바운드
2009-2010시즌(안양 KT&G)_17G 17.4득점 8.0리바운드
2009-2010시즌(부산 KT)_30G 8.1득점 4.1리바운드
2010-2011시즌(서울 삼성)_48G 6.8득점 3.9리바운드
나이젤 딕슨은 ‘코트 위의 킹콩’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구의 상남자였다. 마크 샐리어스의 대체 선수로 KBL 무대를 밟게 된 그는 입단식부터 화제였다. 150kg까지 측정할 수 있는 체중계가 버티지 못했고 결국 특수 체중계를 통해 156kg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허리는 무려 46인치. 205cm 156kg를 자랑한 딕슨은 데뷔전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데뷔전이었던 대구 오리온스 전에서 30분 38초 동안 23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 야투 성공률은 무려 83%에 가까웠다. KTF는 비록 87-105로 패배했지만 딕슨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경기였다. 이후 딕슨의 파괴력은 KBL을 뒤흔들었다. 무릎 부상으로 중도 이탈할 때까지 경기당 15.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중 올스타전에 출전해 KBL의 명예를 드높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KBL에 빠져 있던 기자는 덩치가 큰 친구들을 보고 딕슨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임팩트는 강렬했다. 그러나 신이 내린 몸을 인간이 컨트롤하기는 힘들었다. 이후 KBL에 2시즌 더 잔류했지만 과거의 위력을 뽐내지 못한 채 이별하고 말았다.
▲ 안양에 내린 ‘빛’, 15연승의 전설 단테 존스
※ KBL 커리어
2004-2005시즌(안양 SBS)_16G 29.3득점 12.1리바운드 3.3어시스트 2.4스틸 1.0블록
2005-2006시즌(안양 KT&G)_54G 29.2득점 10.6리바운드 2.0어시스트 1.8스틸
2006-2007시즌(안양 KT&G)_54G 24.1득점 9.3리바운드 2.3어시스트 1.7스틸
단테 존스는 사실 KBL에 올 수 없었던 선수였다. 수많은 구단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시선조차 주지 않았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안양 SBS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김동광 KBL 경기본부장도 존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당시 18승 20패로 6위에 머물고 있었던 SBS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니어 버로의 전화 한 통으로 존스의 KBL 데뷔가 이뤄졌다. 두 선수의 깊은 인연은 곧 SBS라는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존스는 데뷔전부터 펄펄 날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페이더웨이는 연신 림을 갈랐고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역시 일품이었다. 23득점 11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한 존스는 94-85 승리를 이끌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SBS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단일 시즌 최다 15연승(이후 2011-2012시즌 원주 동부가 16연승으로 경신)을 기록하며 단숨에 3위까지 상승했다. ‘단테 존스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고 매 경기마다 안양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실력만큼 대단했던 존스의 팬 서비스는 프로란 무엇인지 한 번 더 각인시켜죽도 했다. 비록 KBL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존스의 영향력은 KBL의 부흥기를 이끄는 데 충분했다.
▲ ‘핏마교주’, 어나더레벨의 끝판왕이었던 피트 마이클
※ KBL 커리어
2006-2007시즌(대구 오리온스)_52G 35.1득점 10.9리바운드 2.6어시스트 1.2스틸
2000년대 중반 KBL의 자유계약 시절 외국선수들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의 화려함과 화끈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 ‘핏마교주’ 피트 마이클이 아닐까. 22년 역사를 자랑하는 KBL에 있어 마이클은 단 한 시즌을 뛰었음에도 평생 넘기 힘든 기록을 세웠다. 2006-2007시즌 평균 35.1득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김승현 스포티비 해설위원 역시 “많은 외국선수와 함께 뛰어봤지만 (피트)마이클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선수였다”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데뷔전 역시 화끈했다. 인천 전자랜드를 상대로 37득점 12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쇼타임 오리온스’를 예고했다. 2001-2002시즌 통합우승 이후 정상에 설 기회를 잡았던 오리온스는 아쉽게도 모비스에 발목이 잡히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마이클은 플레이오프 6경기 동안 평균 39.0득점 12.8리바운드 2.3어시스트 1.6스틸로 역대급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불과 한 시즌이었지만 아직도 마이클은 KBL 역대 최고의 외국선수로 꼽히고 있다. 다시는 보기 힘든 수준의 선수라는 평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 원주 DB 돌풍 이끈 디온테 버튼
※ KBL 커리어
2017-2018시즌(원주 DB)_54G 23.5득점 8.5리바운드 3.6어시스트 1.7스틸 1.0블록
2017-2018시즌 원주 DB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팀이었다. 개막 전 전문가들은 대부분 DB를 ‘꼴찌 후보’로 평가했고 잘해봐야 6강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 혹평했다. 심지어 첫 상대 역시 ‘우승 후보’ 전주 KCC였다. 모두가 KCC의 완승을 예상한 그때 전혀 다른 결과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디온테 버튼이 존재했다. 버튼은 2017 KBL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DB에 선발됐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KCC 전 1쿼터까지만 하더라도 그 예상은 들어맞는 듯했다. 3개의 야투를 시도했지만 림을 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쿼터부터 버튼이 시동을 걸었다. KCC의 골밑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고 화끈한 덩크까지 선보였다. 당황한 KCC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후반 역시 밀리고 말았다. 운명의 4쿼터를 맞이한 버튼은 접전 상황에서 3점슛과 파울 유도 및 자유투로 KCC를 무너뜨렸다. 거대한 공룡을 무너뜨린 버튼과 DB는 파죽지세 행보를 거듭하며 2011-2012시즌 이후 6년 만에 정규경기 1위 및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통합우승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버튼은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고 NBA 도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한 축을 맡고 있다.
▶ 못 다한 이야기…
앞서 언급한 7명의 외국선수 이외에도 KBL을 화려하게 수놓은 주인공들은 많다. 故크리스 윌리엄스, 데이본 제퍼슨, 故안드레 에밋 등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며 외국선수들 중 최정상에 선 이들도 있다. 최근 LG의 새 외국선수로 등장한 마이크 해리스 역시 데뷔전부터 41득점을 퍼부으며 이름값을 증명했다. KBL 초창기 시절에 비해 수비 강도가 더 높아진 현재에 들어 첫 경기부터 40득점을 넘겼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외국선수들에게 무한히 의존해서는 팬들을 끌어올 수가 없다. 하지만 국내선수들이 보여줄 수 없는 퍼포먼스를 대신 해줄 수 있는 외국선수들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도 자유계약제 아래 수많은 외국선수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제는 역사가 된 외국선수들을 뛰어 넘을 더 멋지고 화려한 이들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자료출처 :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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