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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비주류 설움 떨쳐낸 '추신사'의 첫 KBL 정상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9. 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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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2. 21

 

 ‘추신사’ 추일승 감독은 지난 19일, 2011년부터 잡았던 정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대한민국 농구계의 비주류에서 '진정한 주류'로서 KBL 무대를 떠났다.

추일승 감독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공부하는 지도자’다. 오랜 시간 농구계에 몸담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음에도 새로운 것에 대해 낯선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2015-2016시즌, 추일승 감독은 현대 농구의 트렌드에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공격 농구로 오리온을 14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그렇게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는 지도자였다.

◇ 계약 마지막 해, 추일승 감독의 농구를 증명하다

2015-2016시즌은 추일승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였다.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았던 2014-2015시즌을 뒤로 한 채 새롭게 맞이한 2015-2016시즌은 그에게 있어 가장 극적인 순간이 됐다. 하고 싶은 농구를 하겠다는 마음은 간절했고 또 강했다. 선수 구성만 봐도 추일승 감독이 어떤 농구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다.

먼저 외국선수 구성부터 살펴보자. 추일승 감독은 1라운드 외국선수로 애런 헤인즈를 지명했다. 이미 삼성, 현대모비스, LG, SK를 거쳐 검증된 그를 메인 외국선수로서 선택한 것이다. ‘타짜’가 필요했던 오리온에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더불어 2라운드에서는 조 잭슨을 선발했다. 193cm 이하의 단신 외국선수를 반드시 선발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구단들은 단신 빅맨 유형의 선수들을 지켜봤다. 그러나 추일승 감독은 유일하게 180.2cm의 잭슨을 선택했고 의외라는 평가 속에서도 꿋꿋이 버텼다.

추일승 감독은 국내선수 라인업 역시 크게 신경 썼다. LG에서 FA로 풀린 문태종을 사인 앤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전성기 기량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한 방을 터뜨려 줄 수 있는 선수로 평가한 것. 더불어 故정재홍까지 전자랜드에서 돌아오며 완전체가 됐다.

결과적으로 추일승 감독과 오리온의 2015-2016시즌 동행은 성공적이었다. 초반 라운드부터 화끈한 공격 농구를 펼쳤고 보는 재미를 넘치게 했다. 헤인즈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긴급 수혈한 제스퍼 존슨, 초반 부진을 딛고 일어선 잭슨의 활약에 힘입어 상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더불어 김동욱, 문태종, 이승현 등 핵심 코어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후반 라운드에서의 부진은 4강 직행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헤인즈의 컨디션 난조, KCC와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의 강세로 인해 32승 22패, 최종 3위로 정규경기를 마무리했다. 결국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르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험난해졌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오리온은 굉장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동부(현 DB)를 3전 전승으로 완벽히 꺾으며 2006-2007시즌 이후 9년 만에 4강 진출을 해냈다. 3경기 평균 89.0득점이라는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며 전 시즌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팀을 제압했다.

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공격이 아닌 수비로 디펜딩 챔피언을 무너뜨렸다. 추일승 감독은 모비스의 핵심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양동근을 최진수로 막으며 실점을 최소화했다. 상무에서 돌아온 최진수는 공격 욕심을 버리고 수비에 집중하며 오리온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도왔다. 당시 오리온은 3전 전승 과정에서 평균 62.0실점을 기록하며 ‘짠물 수비’를 선보였다.

6강 플레이오프는 공격, 4강 플레이오프는 수비에 무게 중심을 둔 오리온의 농구는 팔색조 매력을 과시했다. 때에 따라 전체적인 스타일 변화를 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잘 준비된 팀이라는 걸 증명했다.

◇ 타짜 본능 발휘한 추일승 감독, 거함 KCC를 무너뜨리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KCC는 이전에 만난 동부, 모비스와는 전혀 다른 팀이었다. 故안드레 에밋과 허버트 힐로 구성된 외국선수 듀오는 막강했고 전태풍과 김태술, 김효범, 하승진, 정희재 등 국내선수도 탄탄했다. 특히 정규경기 막판 12연승을 달리며 16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는 점도 위협적이었다.

당시 언론의 예상도 KCC의 우세가 대다수였을 정도로 오리온에 있어 유리하지 못한 분위기가 자리했다. 전주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김민구에게 쐐기 3점포를 얻어맞으며 76-82로 패했을 때만 하더라도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나, 오리온은 2차전부터 일방적으로 KCC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추일승 감독의 전술이 빛나기 시작한다. 당시 KCC는 KBL 최고의 외국선수 에밋을 중심으로 한 농구가 중심이었다. 에밋은 어떤 수비로도 막을 수 없는 존재. 추일승 감독은 에밋 외의 득점을 최소화하며 철저한 계산이 담긴 농구를 펼쳤다.

제2의 전성기를 맞았던 하승진은 이승현에게 맡겼다. 221cm와 197cm의 신장 열세는 대단히 컸지만 이승현이 가진 특유의 힘으로 하승진의 골밑 침투를 저지하며 KCC의 절대 강점을 약점으로 돌려놨다.

오리온은 철저히 공간을 활용한 농구, 그리고 빠른 공수전환을 통해 KCC를 천천히 무너뜨렸다. 1패 뒤 3승을 가져간 그들은 고양에서 열린 6차전서 120-86, 일방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 2001-2002시즌 이후 14년 만에 정상을 차지했다.

그동안 농구계의 비주류로 분류된 추일승 감독은 드디어 승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감독 생활을 해오면서 비주류라는 것, 그리고 우승 경험이 없다는 두 가지 꼬리표가 항상 힘들게 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내가 잘해왔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에는 연세대, 고려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주류다. 이번에는 우승까지 하게 돼 두 배로 기쁘다"라고 감동적인 소감을 전했다.

◇ 조력자들이 바라본 2015-2016시즌의 추일승 감독

추일승 감독의 2015-2016시즌은 특별했다. 그동안 추구해왔던 농구에 있어서 크게 다른 부분은 없지만 마치 이때를 위해 준비해온 것처럼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던 시기였다.

추일승 감독이 바라는 포워드 농구의 핵심은 ‘포인트 포워드’다. 유독 가드 전력이 빈약했던 오리온의 입장에서 포인트가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포워드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김동욱이 해냈다. 또 승부처에서 강했던 문태종과 수비에서 큰 힘을 보탠 이승현, 돌아온 최진수와 장재석, 끝으로 슈터 허일영까지 다양한 색깔을 지닌 포워드가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리더십, 그건 추일승 감독의 몫이었다.

김태훈 오리온 사무국장은 “사실 어떤 팀이 정상을 차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특별함이 없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특별함이란 변수로 설명할 수 있는데 당시 우리는 주축 선수들의 치명적인 부상이 없었고 이탈도 없었다. 부상이 있어도 금방 돌아왔고 재정비가 빨랐다”라며 “또 (추일승)감독님이 추구하는 농구를 100% 해낼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포워드를 중심으로 한 농구는 예전에도 강조하신 부분이 있지만 완벽했던 시즌은 찾기 힘들다. 2015-2016시즌 당시 우리는 경기 운영이 가능했던 (김)동욱이가 있었고 신인 티를 갓 벗었음에도 완벽했던 (이)승현이, 그리고 ‘타짜’ (문)태종이가 있었다. 여기에 (애런)헤인즈와 (조)잭슨 등 정말 우승할 수밖에 없는 멤버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건 (추일승)감독님의 몫이었고 또 해내셨다”라고 바라봤다.

이어 “사실 감독님이 2015-2016시즌에 한정해서 포워드 농구를 하셨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바라셨던 부분이었는데 최고의 조합, 그리고 결과가 나타난 시기가 그때가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특별함이 없는 ‘특별함’이라고 해야 할까”라고 덧붙였다.

2013년부터 추일승 감독과 함께해온 김병철 감독 대행 역시 2015-2016시즌 당시를 회상하며 “그동안 준비해온 부분이 결과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감독님은 우리의 가드진이 약하다는 사실에 굉장히 고민하셨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선수들을 지켜보셨다. 헤인즈와 김동욱은 장신 선수이지만 경기 조율이 가능했고 이를 120% 활용하려 했다.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쉽게 할 수 없는 농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시는 분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핵심 자원으로서 오리온의 정상 질주를 이끌었던 김동욱은 추일승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농구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준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동안 농구를 해오면서 스몰포워드, 또는 파워포워드로 뛰어왔다. 그러나 추일승 감독님을 만나고 난 후 가끔 포인트가드가 됐고 주로 슈팅가드 포지션으로 뛰어왔다. 농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투맨 게임을 통한 미스 매치 유발 등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이제까지 배워보지 못한 농구였다. 그 시간은 내 농구 인생에 있어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많이 배웠고 성장할 수 있는 시기였다.” 김동욱의 말이다.

※ 아듀! ‘추신사’, 도전을 겁내지 않았던 남자

추일승 감독은 도전에 겁내지 않았다.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매번 실패하지도 않았다. 그가 걸으려 하는 길은 매번 험난했다. 대부분의 팀들이 정통 빅맨 유형의 외국선수를 선발할 때에도 포워드 형 외국선수는 물론 대릴 먼로와 같이 이타적이면서도 위력적인 외국선수를 선택하기도 했다. 남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물음표를 던졌고 자신만의 길을 새로 만들려는 노력을 잃지 않았다.

누군가는 승장, 누군가는 패장으로 기억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추일승 감독만큼 도전 의식이 강한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한 곳에서 성공이란 결과를 만들어냈던 추일승 감독. 욕심 없이 떠난 그의 뒷모습은 분명 가벼웠을 것이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자료출처 : 접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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