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03.
KBL 역사에 있어 2012년 1월 31일은 이제는 돌이키기 힘든 추억의 날이 됐다. 2002년부터 정착된 ‘겨울’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가 막을 내린 때이기 때문이다.
KBL의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 역사는 현주엽 LG 감독이 주인공이었던 1998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매 시즌마다 드래프트 시기가 바뀌는 등 안정적이지 못했다. 2001년까지 3월, 12월, 10월 등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KBL은 고심 끝에 ‘김주성 드래프트’였던 2002년부터 1~2월 사이에 드래프트를 개최해왔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정착해 온 드래프트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드래프트 대상인 대학 4학년 선수들이 졸업 후 연말부터 연초까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주된 이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프로 무대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 드래프트 시기의 변경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KBL은 2012년 1월 드래프트 이후 대학 졸업 대상자들의 시즌이 마무리되는 10월경으로 드래프트 시기를 앞당기는 데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2012년 1월에 열린 드래프트가 겨울에 열리는 최후의 ‘드래프트’가 된 것이다.
▲ 최후의 겨울 드래프트를 빛낸 ‘투 스타’
마지막 ‘겨울 드래프트’였던 만큼 특별한 일도 많았다. 직전까지 강력한 1순위 후보였던 건국대 최부경이 명지대 김시래에게 전체 1순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모비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김시래는 양동근의 대체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겨울 드래프트’의 얼굴이 됐다.
김시래가 전체 1순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임팩트였다. 2011 대학농구리그에서 어시스트상을 수상한 그는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선발, 농구대잔치 준우승 등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약체 명지대를 이끌고 농구대잔치 결승까지 오른 건 ‘시래대잔치’라는 수식어를 낳을 정도로 대단했다.
정상의 자리를 내준 최부경은 전체 2순위로 SK에 지명됐다. 하승진-오세근으로 이어진 황금 라인은 아니었지만 프로에서 당장 기용될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 준수한 센터였다.
김시래와 최부경의 악연(?)은 2012-2013시즌 내내 이어졌다. 신인상 경쟁은 물론 모비스와 SK가 선두를 다툰 만큼 만날 때마다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다.
선공을 내준 최부경은 절치부심한 끝에 김시래를 꺾을 수 있었다. 적응의 시간도 필요 없이 단숨에 주축으로 올라섰고 54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8.5득점 6.4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SK의 창단 첫 정규경기 1위는 덤. 문경은 감독은 당시 최부경에 대해 “다시 드래프트를 한다고 해도 내 선택은 최부경이다”라며 무한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전체 1순위의 부담을 간신히 떨쳐낸 김시래는 54경기 출전, 평균 6.9득점 2.7리바운드 3.0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큰 무대에서 발휘됐다. SK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평균 10.3득점 3.3리바운드 5.0어시스트 2.5스틸을 기록하며 정상 탈환을 이끌었다.
당찬 두 신인은 당당히 제 몫을 해내며 10년을 책임질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김시래는 커티스 위더스-로드 벤슨 트레이드의 후속으로 LG에 넘어갔다. 당시 LG는 향후 세 시즌의 신인 1라운드 지명권 한 장 또는 김시래 중 후자를 선택했다. ‘원 클럽맨’으로 자리잡은 최부경과는 다른 행보를 걷게 된 것이다.
김시래와 최부경을 제외하더라도 2012 1월 드래프트는 준척급 자원들이 많이 등장했다. 전체 3순위로 오리온스에 지명된 김승원, 전체 4순위 최현민(KGC인삼공사), 전체 7순위 차바위(전자랜드), 전체 10순위 장민국(KCC) 등이 프로 무대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각 팀에서 알토란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 2012년 1월 드래프트 지명자(19명)
김시래/최부경/김승원/최현민/박래훈/김명진/차바위/박병우/박지훈/장민국/노승준/이동건/이동하/정준원/조상열/박석환/김건우/장동영/조찬형
▲ 한 해에 두 번 열린 드래프트
2012년 1월 드래프트 이후 KBL은 다음 드래프트를 같은 해 10월 8일로 확정했다. 역사상 최초로 한 해에 두 번 드래프트를 치르는 것. 더불어 2012년 10월 드래프트에 선발된 선수들은 1월에 지명된 선수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신인상 경쟁에 나서게 됐다.
긍정적인 반응과 우려의 시선이 공존했다. 선수들을 보내야 하는 대학 측에선 반가운 일이었다. 당시 대학연맹 전무였던 박건연은 “대학 선수들이 하루라도 빨리 적응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라고 바라봤다. 최부영 전 경희대 감독 역시 “10월 드래프트가 대학 선수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약 10개월가량 소속 구단에서 시즌 준비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2012-2013시즌부터는 1개월도 채 준비하지 못하고 실전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체력적인 문제도 컸다. 1년 내내 온갖 대회를 치른 뒤 만신창이가 된 선수들이 프로 데뷔 후 곧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기적과도 같았다. 더욱 아쉬운 점은 현재까지 언급한 이 문제들이 2019-2020시즌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KBL과 대학농구연맹은 보다 이른 시기에 드래프트 개최에 대해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문제였다. 대학농구리그가 자리 잡았고 여름에는 MBC배, 종별선수권 등이 있어 실제 드래프트가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여러 입장이 오고간 가운데 10월 드래프트는 열렸고 전체 1순위 장재석을 비롯해 임동섭, 유병훈, 박경상, 김지완, 김윤태, 김민욱, 정희재 등 총 20명이 선발됐다. 모두 대학 무대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낸 이들이었지만 프로 무대는 생각보다 냉혹했고 눈에 띄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한 학번 위인 김시래와 최부경이 곧장 주축 선수로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모습이었다(세월이 어느 정도 지난 현재는 대부분 팀의 주축으로 활약 중이다).
※ 2012년 10월 드래프트 지명자(20명)
장재석/임동섭/유병훈/박경상/임종일/김지완/이원대/김윤태/김상규/정성수/김민욱/김종범/김현수/정희재/배병준/최수현/모용훈/성재준/윤이규/김기성
▲ 드래프트 시기에 대한 논쟁, 변화의 가능성은?
10월 드래프트는 경희대 Big3(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처럼 즉시 전력감이 다수 포함된 2013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특히 2013 FIBA 마닐라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활약했던 김종규와 김민구의 이른 프로 데뷔는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큰 기대가 없었던 두경민은 환상적인 데뷔전을 통해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승현과 김준일이 당당히 나섰던 2014년 드래프트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2015년부터 드래프트 시기에 대한 입장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대표급 대학 선수들이 포진했던 과거 드래프트에 비해 2015년부터는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자원들이 극히 적었다. 10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팀 전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던 과거에 대비해 아예 뛰지 못하는 선수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201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문성곤은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코트에 발을 디딜 기회가 거의 없었다.
또 한 번의 ‘황금 드래프트’라고 불린 2016년 드래프트 역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많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종현과 최준용, 강상재 모두 연령별 국가대표는 물론 대학에서의 혹사로 인해 만신창이인 채 프로에 데뷔했다. 그럼에도 각자의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시즌 전 걸었던 큰 기대에 100% 만족할 수는 없었다.
※ 2016-2017시즌 / 이종현·최준용·강상재 신인 성적
이종현_22경기 출전/10.5득점 8.0리바운드 2.2어시스트 1.1스틸 2.0블록
최준용_45경기 출전/8.2득점 7.2리바운드 2.4어시스트 1.1블록
강상재_50경기 출전/8.2득점 4.7리바운드 1.0어시스트<신인상>
‘정유라 사태’ 이후 학점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면서 대학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동안 말 뿐이었던 ‘공부’가 이제는 현실이 된 것. 실제로 학점 관리에 미숙한 선수들은 대학리그에 나설 수 없다. 소통의 문제가 있는 몇몇 대학은 새벽과 야간에만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왜? 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인 선수들의 준비 기간 부족,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경기 투입은 좋은 결과를 전혀 낳지 못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 선배들과의 경쟁을 이겨내는 선수는 극히 드물고 출전 기회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최근 2019년 드래프트에선 프로에 지명된 대부분의 선수들이 몸 관리 부족으로 인해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체지방률이 20%를 오고 가는 상황에서 코트에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물론 이는 100% 선수들의 잘못이지만 말이다.
이에 대한 프로 구단들의 불만은 분명하다. 이미 드래프트 시기에 대한 논쟁도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과거처럼 겨울에 드래프트를 진행한 후 준비 기간을 거쳐 다음 시즌에 투입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핵심은 즉시 전력감이 없다는 것.
과거 A구단 관계자는 “즉시 전력감이 몇 년 사이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드래프트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나 싶다. 또 학점 관리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구단 살림을 줄이는 현시점에 신인 선수들을 그 정도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대학 감독들은 사정이 다르다. 자신들의 선수들이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진출했으면 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들의 의견은 대부분 같다. 4학년 일정이 끝나는 연말부터 연초까지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프로에서 훈련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B대학 감독은 “즉시 전력감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대학 선수들은 4학년 일정이 끝난 뒤 오고 갈 데가 없다. 개인 훈련이 프로에서의 체계적인 훈련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어린 선수들은 벤치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드래프트 시기를 늦추자는 건 너무 앞만 보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프로와 대학의 드래프트 시기에 대한 논쟁은 수년째 계속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수면 위로 떠오른 부분은 없다. 현재로서는 현 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 모든 제도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면 100%는 아니지만 99%의 만족을 끌어낼 수 있다. 드래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자료출처 :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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