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02
사실 아버지가 더 긴장했다. 경기 전 아들에게 “침착하게 하라”고 말은 했지만 떨리는 건 오히려 아버지의 가슴이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똑같다.
프로야구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등판한 아들은 KIA 최희섭에게 홈런을 맞았다. ‘상대가 상대이니까’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쉽다. 선발이니까, 승부가 늦는 버릇이 있으니까, 볼배합의 패턴을 빨리 가져가라고 얘기했던 게 오히려 화근이었을까. 노심초사.
다행히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옛날 아버지 자신도 그 한가운데 있었던 그 타선이 터져 준 덕에 첫 선발등판에서 아들은 승리를 따냈다. 6이닝 2안타 5삼진. 1실점. 안타 2개 중 하나가 최희섭에게 맞은 홈런.
아버지는 대놓고 기뻐할 수 없었다. 경기 감독관이었다. 아버지는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대신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메시지를 남겼다.
‘수고했다.’
아버지는 유승안 KBO 경기운영위원. 아들은 한화 투수 유원상이었다.
아버지는 벽이다. 미당 서정주는 ‘애비는 종이었다’고 했고, 소설가 이문열은 ‘아비는 빨갱이였다’고 했다.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에게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으며 시인 이성복에게 ‘아버지는 개새끼’였다.
유원상으로서도 스타 포수 출신 아버지는 넘어야 할 벽이다. 유승안 경기운영위원은 “하루 빨리 유원상의 아버지로 불리고 싶다”고 했지만 유원상은 “기대를 많이 받으니까 부담된다”고 했다.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한 SK 김성근 감독의 아들은 SK 김정준 전력분석과장이다. 마찬가지다. 김과장은 “내가 야구할 때, 나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르치는 선수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가끔 집에 들어왔을 때, 눈이라도 마주치면 조용히 야구 장비를 싸들고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다. 이슬이 내릴 때까지 훈련을 했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야구장이’였다.
김감독이 쌍방울 감독이었던 시절, 아들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한 사람의 창의력보다 열 사람의 창의력이 더 센 법”이라고 했다. 김감독은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서야 그 말이 귀에 들어온다”고 했다. 김과장은 아버지를 넘었을까. 김과장은 “아버지 백으로 설친다고 할까봐 여전히 조심스럽다”고 했다. 아버지의 벽은 높고도 험하다. 어쩌면 한국프로야구 이제야 26년. 시간이 약이 되면 아버지를 넘는 아들이 나올까.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은 1990년 9월14일 나왔다.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 1회 초.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는 좌중간 2점 홈런을 때리고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아들 켄 그리피 주니어는 볼카운트 0-3에서 아버지가 때린 바로 그 자리로,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 부전자전 연속타자 홈런을 때려 넘겼다. 아버지는 말했다.
“잘했어, 홈런은 바로 그렇게 치는 거야.”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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