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18
지금도 축구를 즐기나요?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마인츠에서 친하게 지내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들은 수요일 밤마다 축구를 하러 간다며 아주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축구를 하러 간다며 즐겁게 말했던 적은 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축구가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온전히 느끼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처럼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를 하지 못하게 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축구를 업으로 삼은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누군가에겐 즐거운 놀이인 축구가 직업이 되었을 때 생기는 일들,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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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축구는 내게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즐기는 놀이였다. 어릴 때 틈만 나면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가 동네 형들,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았다.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는지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대로 된 골대 하나 없었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골대를 정하고, 골키퍼도 세워두고 축구를 즐겼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때 나는 매일 점심시간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맛있는 급식이 나와서가 아니다. 골대가 있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나는 급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배고픔도 잊은 채 수많은 아이들 틈에서 마음껏 뛰었다. 공을 이리저리 몰아 골대에 골을 넣을 때면 날아갈 듯이 기쁘고 신났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학생이었지만 축구를 할 때만큼은 가장 활발하고 말도 많이 하는 적극적인 소년으로 변했다. 그때 그 시절의 축구는 내게 즐거움과 행복 그 자체였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건 그런 내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프로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희생 등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축구선수를 꿈꿨다.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전혀 몰랐다. 축구부에 들어가서 매일 신나게 축구만 하면 축구선수가 되는 줄 알았다. 아파트 주차장이나 학교 운동장보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났다.
축구부에 들어간 순간 깨달았다.
아, 나의 착각이었구나.
공 하나를 두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축구는 그곳엔 없었다. 아주 기초적인 기본기 훈련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냥 축구공을 뻥뻥 차며 놀고 싶은데… 내게 훈련 시스템은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즐거운 나날보다 고된 시간이 더 많았다. 후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피하고 싶은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그런 고된 훈련 속에서 비로소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시간이 쌓였을 때부터다. 그런 지루한 훈련들이 나를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발전하는 걸 느끼면서부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겁게 훈련장에 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인내의 시간은 내가 꿈으로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줬다. 프로 축구선수가 됐다. 이제는 진짜, 축구는 내게 놀이가 아니다. 마냥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놀이가 아닌 나의 직업이다. 솔직히 축구선수의 삶이 이렇게 고단하고 힘들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때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만 마음껏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 만만한 직업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들어가는 에너지와 정성이 상상 이상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몸에 좋지 않으면 참아야 하고,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도 다음날 운동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참 힘들다. 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참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는 이가 많을 거로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해외 생활을 하며 끼니 걱정을 가장 많이 한다. 시간이 없고 요리하기 어려울 때면 간편하고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과 패스트푸드를 많이 찾게 된다. 간단하고 맛도 있어 더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그만큼 몸에 좋지 않다. 음식이 우리 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기에 라면과 패스트푸드는 최대한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간식으로 컵라면이 나왔는데, 잠깐 흔들렸지만 대신 김밥을 먹으며 간신히 참아낸 적도 있다. 또,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보드게임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논다. 그럴수록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순식간에 늦은 밤이 된다. 나도 마지막까지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데 다음날을 위해 먼저 일어나 홀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꾹 참고 지키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몸에 이상이 바로 생기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직업이기에 식단부터 수면 관리, 평소 생활 습관, 하루 활동량 등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휴가를 받아도 마음껏 놀 수 없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선을 지켜야 하고, 체력 관리를 위해 틈틈이 운동도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출근과 퇴근이 없는 직업이다. 365일 쉬지 않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뛰고, 땀을 비 오듯이 흘려도 뿌듯함과 보람이 없을 때다. 바로 결과에 따라서다. 경기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했더라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를 위해 흘린 땀의 보람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정말 모든 힘을 쥐어짜서 뛰었지만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이란.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다. 내가 그렇게 준비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답답한 심정이다. 특히 마인츠에 처음 왔을 때 그런 경험을 자주 했다. 훈련에서 나의 퍼포먼스가 올라오지 않고, 경기력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 평소보다 더 많이 훈련했는데도 나아지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럴 때 축구부 시절 기억이 큰 도움이 됐다. 이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결국에는 도움이 되는 걸 경험했기에 훈련의 강도를 낮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다들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과 만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다른 스포츠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겨울 휴식기에는 마인츠의 친구들과 러닝을 뛰었다. 친구들에게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다. 친구들은 그날 러닝을 뛴 후 보람을 느껴 꾸준히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보람찼다. 함께 배드민턴도 친다. 어느 순간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신난 마음으로 배드민턴을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껏 웃고 떠들며 하고 싶은 대로 즐기고 있었다. 어렸을 때 즐겁게 축구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많은 움직임이 필요한 운동이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내게 부담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배드민턴을 치는 동안 느끼는 호르몬은 진정한 즐거움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요소다. 내게는 오히려 운동의 영역이 아닌 놀이에 더 가깝다. 그런 취미를 찾아 기쁘고 감사하다.
네이버스포츠를 통해 연재하는 칼럼도 내게는 그런 시간 중 하나다. 칼럼을 발행할 때마다 기쁘고 보람차다. 평소에도 일기를 즐겨 썼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어색하고 어려웠다. 막상 시작하니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을 수 있어 좋다. 나의 직업이 축구선수이니 경기장 위에서 축구를 통해 팬분들과 소통하는 게 맞지만, 이렇게 경기장 밖에서도 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 내겐 아주 뜻깊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는 독자분들의 모습은 내게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나의 축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축구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결국엔 전부 축구를 위한 일이다. 잠시 축구선수 스위치를 OFF로 끄는 순간이 있어야 다음 훈련과 경기에서 더 밝은 빛을 뿜어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축구선수는 365일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우리도 사람이니, 결국엔 지친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취미 생활을 찾고, 또 다른 보람차고 즐거운 활동을 하다 보면 축구에도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없이, 기분 좋게, 마음 편히 뛸 수 있다.
축구는 내게 그런 존재다. 어렵고 고된 시간이 끊임없이 찾아와도 내게 결국 가장 큰 행복감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정말 사랑하게 됐다. 축구에 대한 사랑은 고된 훈련 속에서도 인내하게 해주고, 좌절의 아픔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나를 더 강하고 단단하게 해준다. 그만큼 사랑은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감정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축구를 통해 느끼는 행복과 보람은 그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나의 이런 모든 순간을 독자분들과 공유할 수 있어 영광이다.
지금도 축구를 즐기나요?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래서, YES다.
이재성 / 분데스히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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