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21
자철이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도 틈틈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건네주곤 했다. 늘 나를 걱정하거나 응원하는 통화였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진하게 들려왔다. 형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제주유나이티드 복귀를 앞둔 자철이 형의 마음은 싱숭생숭해 보였다. 형은 독일에서 8년을 뛰었다.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온 형은 자기 자신을 옥죄는 스트레스를 내려놓기 위해 카타르로 향했다. 이제는 K리그다. 그동안 뛰지 못한 시간이 꽤 되어 형은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유럽에서 뛴, 국가대표로 뛴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실전 감각에 대한 우려가 커 보였다. 그래도 설렘과 기대감이 묻어있다. 11년 동안 해외에서 치열하게 부딪힌 자철이 형을 생각하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위해, 자기의 시작이었던 K리그로 돌아가는 모습이 멋지고 기대가 된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도 생각하게 됐다. 나 역시 늘 K리그도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자철이 형을 비롯해 유럽에서 뛰던 동료들이 한국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언제쯤 돌아가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글을 쓰며 나의 미래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왜 돌아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래서 ‘K리그 복귀’를 주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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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철이 형 이전에 많은 해외파 선수가 K리그로 향했다. 대표적으로 (기)성용이 형과 (이)청용이 형이다. 형들의 복귀로 많은 팬이 기뻐하고, 국내 축구에도 활력이 더해진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뒤를 이어 다양한 선수가 한국에 도착했다.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백)승호, (이)승우나 (권)창훈이 등이 있다. 예전보다 한국으로 향하는 빈도수가 높아진 데는 아무래도 성용이 형, 청용이 형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K리그로 향하는 게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형들이 물꼬를 잘 터줬다.
이렇게 K리그로 돌아가는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선수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복귀의 의미 역시 선수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위해, 또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K리그로 향한다. 청용이 형, 성용이 형은 특히 K리그에서 정점을 찍었던 선수들이다. 꿈을 이루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곳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만큼 값진 게 있을까. 승호는 조금 다른 경우다. 승호는 유럽에서의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했다. 전북현대로 간다면 다시 유럽으로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만큼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의지가 컸다. 나는 승호의 그런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그만큼 유럽에서 뛰는 기회가 얼마나 어렵게 찾아오는 것인지 알고, 그 과정을 K리그에서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승호에게 전북 이적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선수로서 경기장에서 보여줄 기회가 있어야 하고, 그게 가장 우선이다. 나는 승호가 전북에서 분명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 또 한 번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승호에겐 K리그 입성이 또 다른 기회를 위한 디딤돌인 셈이다. 전에 없던 좋은 사례가 될수 있다. 가까운 예로 일본에 우사미 타카시가 있다. 분데스리가와 J리그를 오갔다. 감바 오사카로 돌아간 이후에도 다시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해 분데스리가에 정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승호가 한국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그런 승호의 선택과 용기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수들의 한국 복귀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차차 줄어들 거로 확신한다.
물론 유럽파 선수로서 국내로 돌아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결심부터 어렵고, 돌아간 후 적응 기간도 꽤 걸린다. 우선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은 기분이 좋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뛰고,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축구선수는 계속 증명해 보여야 한다. 특히 ‘유럽파’ 타이틀에 걸린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도전이 되는 셈이다. 부담감도 크고, 걱정도 된다. 그렇게 큰 결심을 하고, 용기를 갖고 K리그로 가면 다시 커다란 산이 있다. 적응기다. 한국 선수니까 당연히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르다. 해외에선 비교적 자유롭게 지낸다. 경기 준비도 늘 편한 분위기 속에서 한다. 아무리 중요한 경기를 앞둬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준비한다.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 당연히 있지만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한국은 다르다. 전북만 봐도 그렇다. 몇 경기 이기지 못하면 바로 합숙에 들어간다. 경기장 밖에서도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작은 행동 하나하나 눈치를 봐야 하는 순간이 많다. 해외에서 오래 뛰다 국내로 돌아간 선수들은 이런 부분에서 힘들어한다. 다행히 언어나 새로운 문화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고, 음식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 편하다고 한다. 쉬는 날 함께할 가족과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는 것 또한 장점이라고.
그렇다면 선수들이 K리그 복귀를 결심하는 시점이나 계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유럽에서 도전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선수마다 유럽에서의 계획이 있다. 몇 살에 이 정도 무대에서 뛰고, 몇 살에 어느 위치에 있고… 나 같은 경우 마인츠에서 3년 계약을 했는데 3년이 지난 후에 어떤 도전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많지 않다. 당연히 유럽대항전도 뛰어보고 싶지만 UEFA 유로파리그 뛰어보겠다고 3년 후 벨기에 리그로 간다고 생각하면… 글쎄. 그 도전의 가치가 더 클지, K리그 복귀가 가져다주는 가치가 더 클지 고민해야 한다. 그 순간 유럽에서의 도전이 더는 의미가 크게 없다고 느껴질 때 K리그 복귀를 결심하는 것 같다. 청용이 형이 이전에 몸이 너무 망가지기 전에 복귀하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괜히 유럽에서 전전긍긍하다가 몸이 완전히 망가진 채로 국내 무대에 복귀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뛸 수 있을 때 국내 팬 앞에 서는 게 나으니까. 두 번째는 소속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다. 이럴 때 국내 무대로 가서 다시 한번 선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전 경쟁을 하며 자기 자신이 초라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는데 K리그에서 기회를 보장받는다면 돌아가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다. 물론 K리그에서의 경쟁도 각오해야겠지만.
이제 슬슬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나는 홀슈타인 킬에 입단한 순간부터 늘 전북 복귀를 생각했다. 이 결심이 흔들린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말했다. 유럽에서의 도전이 내 혼자만의 도전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다. 이는 전북과 함께 하는 도전이라 생각한다. 전북이라는 팀에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고, 꿈을 계속 실현할 수 있다. 전북에서 첫 번째 배출한 유럽 진출 선수이기에 책임감을 많이 갖고 있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갈 거로 생각한다.
유럽으로 오기 전 전북 동료들과 인사를 나눌 때 (이)동국이 형이 해준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넌 돌아올 고향이 있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뛰다가 와라.” 그 말이 나는 정말 든든했다. 도전을 앞두고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할 때, 내가 설령 원하는 만큼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날 환영해줄 고향 같은 팀이 있다는 건 내게 더 큰 용기를 심어줬다. 휴식기에 전북으로 놀러가면 구단 사무실 직원 형들도 “재성아 우리는 언제든지 너를 환영할 거야”라고 말해준다.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내가 와야 할 곳은 결국 이곳이구나, 라는 걸 매년 느낀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게 ‘그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왜 꼭 다시 돌아가려 하나’라는 말을 하더라도, 난 말한다. 꼭, 반드시 전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유럽에서는 얼마든지 팀을 고를 수 있지만 K리그에서는 그런 선택지가 없다. 무조건 전북이다. 나의 꿈을 위해 양보해준 것이 많아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한다.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유럽에서 뛸 만큼 뛰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돌아가는 건데, 과연 진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성용이 형이 “나의 실력은 죽지 않았다. 다 보여줄 수 있다”라고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계속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이전에는 K리그 복귀를 조금 쉽게 생각했다. 유럽에서 이렇게 고생했는데 한국에 가면 좀 더 편해지겠지? 날 받아줄 팀이 있고, 팬들도 예전의 내 모습을 기억해주며 나를 잘 받아주겠지? 라고 막연히, 편안하게 생각했다. 최근 성용이 형, 청용이 형의 모습을 보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형들이 보여주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가져야겠구나. 결국 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될 테고, 그럼 팀에게도 팬들에게도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이전처럼 마냥 해맑게 “꼭 전북으로 갈게요!”라고 말하기 힘들다. 내가 복귀하는 시점에 내 퍼포먼스가 과연 전북이라는 팀에 어울릴까? 예전의 나를 기대하는 많은 팬과 구단의 입장이 있을 텐데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청용이 형이 내게 몸이 너무 망가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했나 보다. 나의 복귀가 전북에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시기를 잘 찾아야 할 것 같다. 문득 든 생각인데, 유럽 도전도 쉽지 않은데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 같다.
국내로 복귀하는 선수들에 대한 시선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궁금하다. 유럽에서 성공과 실패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대다수는 한 선수가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면 곧 실패처럼 여긴다. 선수가 경기를 뛰지 못한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실패라고 말하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해외 진출은 정말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이걸 기준으로 삼으면, 해외파 선수들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해외 리그를 직접 몸으로 느끼고 배우며 얻는 것은 감히 정의할 수 없는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K리그로 복귀하는 선수들을 낙오자로 보지 않고 ‘도전한 선수’로 보면 어떨까. 그들이 했던 도전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줬으면 좋겠다. 잘하고 왔다고, 고생했다고. 편한 길이 있었지만 축구를 정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려운 길을 택한 선수들이다. 원했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해도 그 도전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K리그는 또다른 도전이고. 그들을 보고 또 다른 선수들이 용기를 얻고 있을 거다. 이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향후 어떤 선수가 선뜻 도전할 수 있을까.
우리 선수들도 그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K리그로 돌아간 후 보여줘야 할 모습은 당연히 실력이다. 자신이 왜 해외에서, 유럽에서 뛰었는지 증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팬들 역시 해외파 선수가 가진 어떤 특별한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두 번째는 해외에서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는 일. 경험이 전무한 선수들에게 간접적으로 그 경험을 심어줄 수 있다. 도전을 망설이는 어린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이 시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렇게 서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겸손한 마음이지 않을까. 마냥 편안하게 복귀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K리그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만큼 더 겸손한 모습으로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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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복귀한 자철이 형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형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날까지 나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기 자신만 챙겨도 힘들 그 시기에 말이다. 형은 내게 과거의 모습을 잊으라고 했다. 팬들은 내가 전북에서 뛰던 모습을 기억하고, 그때 보여준 더 역동적인 플레이를 기대한다. 독일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분데스리가에 적합한 스타일로 많이 바뀌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해야 하는데, 전북에서 보여준 좀 더 자신 있게 드리블로 돌파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지 못해 나 역시 속상했다. 자철이 형은 내게 그런 과거는 잊고 지금 모습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선수는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한다.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에 자꾸 불만을 갖는데, 자철이 형이 이런 말을 해줘서 굉장히 고마웠다. 그리고 용기가 생겼다. 전북으로 돌아갈 용기. 전북에 돌아가면 분명히 지금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때는 과거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지 않고 내 역량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 겪었기에, 그리고 자철이 형의 조언이 있기에 조금 더 유연하고 능숙하게 어려움을 이겨낼 자신이 있다. 언제가 되든 말이다.
늘 이렇게 대들보처럼 서서 나를 지탱해주고, 지지해주는 자철이 형이 있어 힘이 난다. 형의 새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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