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5. 02.
인스타그램에서 로그아웃했다.
나도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피드를 내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게 싫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포스팅을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는 나를 보며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창 밖에서도 나를 응원해주는 분은 많은데 말이다. 그때부터 SNS를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계정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팬들과의 소통 창구가 사라지는 건 싫어 가끔 로그인해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 칼럼에서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는 바로 이거다. SNS.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축구선수의 입장에서 SNS를 어떻게 활용하고, SNS를 통해 무엇을 얻고 또 잃으며, 어떠한 방향성을 세우고 계정을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해봤다.
나에게 SNS는 일종의 프로필이다. 내 소속팀 마인츠, 국가대표, 스폰서, 네이버 스포츠 칼럼 등 모든 게 들어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릴 수 있는 공간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렇게 활용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찾을 때도 유용하다. 포털 사이트보다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통해 여행이나 내 취향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중요한 SNS의 역할은 소통이다.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
꽤 오래전부터 소통의 공간으로 SNS를 사용했다. 고등학생 때 싸이월드를 하다가 대학생이 되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시작했다.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내 소식을 알리기 위한 도구였다. 주로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는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왔다. 시즌이 끝나고 제주도에서 대표팀 소집이 있는 날 창우 형과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창우 형이 인스타그램을 하는 걸 봤다. 나도 바로 계정을 만들었다. 동료와 친구들을 팔로우하고 서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소소하게 시작했던 인스타그램은 점점 나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지며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경기장이나 훈련장에서도 만날 수 있고, 미디어를 통해서도 팬들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지만 SNS는 내가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겐 특별했다. 축구에 있어서 팬의 존재는 절대적이기에 응원 메시지 하나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가끔은 훈련 스케줄을 묻는 팬들도 있고, 택배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묻는 팬들도 있다. 최대한 다 답변해주려 한다.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팬을 다 챙기기는 쉽지 않다. 훈련과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있어 그럴 때는 일일이 신경을 쓰는 게 어렵다. 하지만 메시지를 못 본 척하는 건 더 어렵다. 조금 피곤해도 시간을 내서 팬들과 시간을 보내려 한다. 한국에서 나를 응원하러 온 분들이나, 독일 내 타지역에서 온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하고 떠나보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 분들이 내게 SNS로 연락을 해주면, 최대한 만나서 조금이나마 시간을 같이 보내려 한다.
전북현대 시절 클럽하우스에 온 팬들이 내게 종종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클럽하우스에 있으면 꼭 나가서 사인도 해드리고 사진도 찍었다. 팬과 선수가 서로를 진짜 알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나를 보러 본에서 마인츠로 오는 팬도 있고, 동아시안컵부터 나를 응원해준 홍콩에 사는 팬은 독일까지 와서 경기를 봤다. 다들 개별적으로 만나 밥도 먹고 시간을 보낸다. 내게는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런 팬분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또, 팬들에게 평소에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 일상 생활의 모습, 내가 경험하는 색다른 풍경 등을 찍어서 올리곤 한다. 가족과 지내는 모습도 종종 올린다. 친구들과 모습을 못 올리는 게 아쉽다. 내 SNS는 더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기에 지인과 하하호호 웃는 모습을 가볍게 올리기가 쉽지 않다.
선을 지킨다고 표현하면 어울릴까? 주목받는 직업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이따금 에이전시에서 선수의 SNS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에이전시도 내게 그런 권유를 했다. 나는 내가 직접 하기를 원했다.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내주는 팬분들이 있는데, 이곳에서만큼은 팬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하고 싶었다.
에이전시에서 관여하고자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요즘은 어떤 게시글에 ‘좋아요’만 눌러도 기사화가 되는 시대다. 선수들끼리 댓글로 주고받은 내용도 기사로 나온다. 언론의 주목까지 받고 있으니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방지하기 위해 ‘좋아요’도 잘 안 누르고, 댓글도 잘 안 남긴다. 특히 이적 시기나 축구에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땐 더 조심하려 한다. 팬들도 탐정처럼 지켜보고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의도치 않게 실수할 때도 있다. 주변 선수들이 당한 걸(?) 보며 더 조심하고 있다. 예전에 대표팀 형들의 트위터 사건도 대표적이다.
구단에서도 주의할 점을 당부할 때가 있다. 새 유니폼이 나왔을 때나 이적 기간에는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절대 사진을 올리지 말라고 한다. 선수들도 얼른 올리고 싶고, ‘좋아요’도 많이 받고 싶어 한다. 아직 이적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는데 이적할 팀을 팔로우한다든가 댓글로 이적을 암시하는 내용을 쓴다든가 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요즘은 팬들도 명탐정이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국에는 확진 선수를 최대한 노출하지 않기 위해 구단에서 노력한다. 한 선수가 덜컥 올린 훈련 단체샷에 특정 선수가 없으면 팬들과 언론은 그를 확진자로 추정한다. 이런 경우들이 있기에 SNS 사용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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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단점을 말할 차례다. 당연하다. 악플. 포털 사이트 댓글창이 닫히면서 선수들의 개인 SNS 계정에 악플이 수없이 많이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국가대표 경기에서 불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그날 SNS 댓글창은 불이 난다. 이란전이 끝나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을 때 안 읽은 댓글 99개가 초 단위로 바뀌며 떴다. 대부분이 나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가 겪었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악플이 수백 개씩 달릴 때는 심리적으로 정말 치명적이다. 나 자신을 숨게 만들고, 도망가게 만든다.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다양한 불안감,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든다. 그 순간은 정말 힘들다. 혼자 있고 싶고, 다시 SNS를 켜기 두려워진다. 최대한 빨리 훌훌 털어내고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더 성숙해지고, 더 강해지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 다행이다. 만약 견디기 힘들고, 심리적으로 계속 불안하다면 SNS는 하지 않는 게 낫다.
그래서 내가 인스타그램을 로그아웃한 이유가 악플 때문이냐고? 아니다. 그땐 오히려 응원을 해주는 분들 덕에 도움이 됐다. 지우고 싶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최근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나도 모르게 SNS를 누르는 버릇이 들었다. 자제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요즘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게시글도 피드에 올라온다. 그걸 넘기다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 누군가를 보며 부러워하는 마음도 나도 모르게 느껴졌다. 부러워하는 감정이 싫은 게 아니다. 왜 인스타그램을 통해 부러워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여기 있다. 사람들의 칭찬에 기대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좋은 경기를 했을 때 팬들의 반응을 기대하게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속 나도 모르게 SNS 속 반응에 시선이 간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박혔다. ‘왜 여기에 집착하고 있지?’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대한 만큼 실망도 하는 나를 보며 반성했다. 남들의 시선에 휘둘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를 응원하는 팬은 어디에나 있는데 왜 SNS에서의 반응에 기뻐하고 있는 걸까. 내가 나의 SNS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게 아닌, SNS가 나를 지배하는 위험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덜 신경 쓰기 위해 로그아웃을 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를 보고 싶어 팔로우를 하는 팬분들이 있기에 중요한 게시글을 올리기는 하지만, 이전보다는 덜하다.
로그아웃을 하니 SNS 접속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만큼 내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아졌다. 인스타그램에서 남을 위해 쓰는 글보다 나를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성경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꾸미며 나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져 좋다.
선수 생활 내내 SNS를 관리하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린 결론은 ‘절제심’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SNS를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안 하기 어려운 시대다. 어린 선수들 대부분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절제심을 갖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유용한 훈련 프로그램이나 롤모델로 삼은 선수들의 플레이 영상 등을 보며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팬들과 적극적인 소통도 가능하다. 팬들의 응원보다 값진 게 있을까. 그렇게 활용하되, 트렌드를 좇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활동은 최대한 안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절제심이 중요하다. 선수 생활 전반적인 부분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이런 방향성을 갖고 SNS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칼럼을 적다보니 SNS를 통해 겪은 재밌는 일화가 떠올랐다. 많은 분이 알다시피 나는 ‘LEE’ 브랜드의 옷을 자주 입는다. 팬이 선물해줘 입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모자가 달린 후드티부터 편안한 티셔츠까지 다양하게 입고 있다. 네이버 스포츠 라이브에서도 이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자주 출연했다. 이걸 브랜드 마케팅팀에서 알게 된 모양이다. 최근 브랜드에서 연락이 왔다. 선물로 몇 벌 보내주겠다고 하더라. 재밌기도 하고, 감사했다. 팬 덕분에 이렇게 브랜드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까지 생겼다. 새 LEE 티셔츠가 도착하면 SNS에 로그인해서 팬들에게 보여줘야겠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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