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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월드컵 뛴 선수가 왜 2부 리그로 왔대?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9. 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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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04

 

꿈에 그리던 유럽에 진출했다. 행선지는 홀슈타인 킬. 내겐 참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곳이 1부이든, 2부이든 상관없다. 나의 꿈, 유럽에 드디어 발을 디뎠으니까. 방금 막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끝낸 후이고 무엇보다 독일 대표팀을 이기고 난 직후라 자신감은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킬에서는 그런 나를 보고 놀랐다. 월드컵에 진출한 선수가 독일 2부로 왔으니 말이다. 당시 친하게 지냈던 피지컬 코치가 해준 이야기다. 팀 발터 감독님이 코칭 스태프와 함께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한국 17번 우리 팀에 올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진짜 한국 17번이 킬에 도착했다. 피지컬 코치는 그때 ‘왜 저 선수가 우리 2부에 왔을까, 독일까지 이긴 선수인데 분데스리가도 아닌 분데스리가 2부라니’라고 생각했단다. 심지어 한 팬은 ‘WELTMEISTER BESIEGER(세계 챔피언 정복자)’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내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 알파벳 LEE를 강조한 티셔츠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독일에서 월드컵이 지닌 의미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이제는 분데스리가 선수로서 월드컵에 진출했다.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월드컵을 준비하며 느낀 점과 더불어 월드컵이 우리 선수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의미인지 이번 칼럼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

 

우리는 카타르에 간다. 무려 10회 연속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내겐 인생 두 번째 월드컵 경험이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월드컵에서 또 뛸 생각을 하니 심장이 쿵쾅거린다. 우리 마인츠 동료들도 내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내심 나를 부러워하는 시선도 알게 모르게 느껴진다. 현역 선수로서 월드컵을 경험할 선수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우리 팀 선수들은 대부분 독일인인데 독일 대표팀에 선발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월드컵 경험은 그 선수들에게 훨씬 어렵고, 감히 꿈꾸기도 힘든 목표다. 특히 나는 러시아 월드컵 출전자라는 이유로 우러러보는 시선을 더 많이 받는다. 최근에는 밥을 먹다가 한 동료가 “너 그럼 독일전도 뛰었어?”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Geil!(대박)”이라며 신기해했다. 또 우리 팀에 독일 U-23 대표팀 주장 요나단 부카르트가 있는데, 늘 내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얘기를 나눈다. 언젠가 본인이 뛸지도 모르는 무대이니 말이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도 부러움이 묻어난다.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증명하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니. 참 신기하다. 그 정도로 월드컵이 가진 의미가 크다.

 

한편 이런 시선도 있다. 한국은 월드컵 가기 쉬운 조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질비안 비드메어라는 스위스 대표팀 선수가 월드컵 진출권을 따고 돌아왔을 때 모든 선수가 훈련에 앞서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다. 우리나라가 진출권을 땄을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개별적으로 축하를 해줬다. 아무래도 스위스는 월드컵 진출이 상대적으로 힘든 국가라서 그런 것 같다. 또, 오스트리아가 플레이오프에 가서 내가 오스트리아 선수에게 “행운을 빈다”라고 얘기하자 그는 “아시아에선 진출하는 게 쉽겠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라고 반응했다. 우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조금 더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도 최종예선 상대 누구인지 얘기하면 어떤 동료들은 상대 국가명을 듣고 웃곤 했다. 본인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부분에선 좀 아쉽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어마어마한 이동 거리부터 시차적응까지 큰 어려움을 겪으며 진출권을 따내는데 말이다. 그런 과정을 그들은 모른다. 가끔 내가 2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시차를 얘기하면 화들짝 놀란다. 

 

​이번 최종예선 2연전을 끝내고 돌아온 후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조 추첨이었다. 우리 팀 선수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과 스위스의 조 추첨도 유심히 지켜봤다.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는 쉽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스위스보단 낫다”라며 장난도 쳤다. 만년 우승 후보 브라질이 있어 그런 것 같다.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며 ‘와, 진짜 월드컵이 시작되는구나’라고 실감했다. 최종예선을 한 경기 한 경기 바삐 치르느라 제대로 실감을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피부로 와닿는다. 사실 결과만 보면 큰 어려움 없이 최종예선을 수월하게 통과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한순간도 쉬웠던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1차전부터 4차전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최종예선의 경우 홈경기는 무조건 승리를 해야 하고, 그만큼 중요한 경기다. 첫 홈경기 이라크전부터 나는 문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쳤다. 결국 경기 내내 골을 넣지 못하고 비겼다. 시작부터 압박감과 부담감이 더욱 커졌다. 2, 3차전 역시 경기엔 출전했지만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선수 생활을 하며 컨디션이 이렇게 나빴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안 좋았다. 소속팀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해 어려움을 느꼈고, 독일과 한국을 한 달 간격으로 오가다 보니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인 부분이 전부 다 힘들었다. 훈련할 때도 힘들고, 경기를 뛸 때도 힘들었다. 정상적인 호흡으로 뛸 수 없었다. 힘든 상태로 계속 뛰어다니다 보니 공을 잡았을 때 내가 잘하는 플레이도 전혀 할 수 없었다. 소극적인 플레이만 반복했다. 나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자신감은 완전 밑바닥을 쳤다. 스스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느낌까지 들어 괴로웠다. 

결국 이란 원정경기에서 쌓여있던 모든 것이 폭발해버렸다. 테헤란 원정에서 처음으로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는데, 순간의 실수로 인해 동점 골을 허용했다. 경기는 비겼다. 나는 아주 쓰고, 비싼 약을 삼켜야만 했다. 참 썼지만 당시 괴로웠던 나의 몸과 마음이 정신을 차렸다. 압박감으로 인해 떨리는 마음은 고이 접어두고,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 조국을 위해 뛸 수 있다는 영광스러운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팀에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다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소중한 약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따낸 월드컵 진출권. 내가 버티고 이겨낼 수 있던 건 월드컵이라는 정말 큰 목표가 나의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진 덕분이었다. 

​월드컵은 내 꿈의 시작이 되어준 무대다. 나뿐만 아니라 지금 대표팀 동료들은 대부분 2002 월드컵 세대다. 그때 우리는 축구가 국민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는지 몸소 경험했다. 골이 들어가면 아파트 전체가 울렸다.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다. 그런 월드컵에서 내가 뛰게 된다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럽다. 내가 어릴 적부터 꿈을 꿔온 무대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미 한 번 뛰었다는 사실조차 꿈만 같다. 

2018년 월드컵을 잠깐 회상해보자면, 준비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감독님도 한 번 바뀌었고, 부상도 많았다. 이래저래 불안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준비할 때 즐겁기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월드컵이 시작된 후에도 우리 선수들은 대부분 경직되어 있었다. 선수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대회이고, 나라를 대표해서 뛴다는 생각이 우리의 어깨를 계속 짓눌렀다. 압박감과 부담감이 상당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더 어려웠던 시간이다. 

이번 월드컵은 느낌이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나로 똘똘 뭉쳐졌다는 느낌을 우리 모두 받고 있다. 그래서 참 기쁘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경기와 훈련 외에 우리가 호텔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관해 미팅도 했다. 나는 심리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2018년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봤다. 힘들어하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어 아쉬웠다. 아무래도 무대가 큰 만큼,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받는 압박감을 나누고 함께 짊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편안한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의 준비 과정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하루도 안 쉬고 준비했는데 독일 대표팀은 며칠씩 쉬며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떻게 이런 큰 대회를 앞두고 쉴 수 있을까? 결과를 떠나 그런 여유가 참 인상적이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이 잘 준비하시겠지만, 선수들이 마음 편히 경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 월드컵에선 정말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압박감과 긴장감은 느끼고 있어야 한다. 다만 너무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준비해온 대로 재밌게 해보고 싶다. (정)우영이 형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보자고 얘기했다. 해볼 건 다 해보자고. 그러기 위해 우리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다른 곳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꿈을 이룰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라는 말처럼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주어진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예상치 못한 부상이 닥친다. 지금부터는 컨디션 싸움이다. 힘든 최종예선의 여정을 거쳐온 만큼, 모두 함께 부상 없이 본선에 나가 즐길 수 있기를. 카타르에 다녀와 마인츠 동료들에게도 웃으며 월드컵 후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이렇게 오늘도 월드컵이 내게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기며 하루를 보낸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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