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재성] 피할 수 없는 내부 경쟁, 어떻게 이겨낼까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9. 16. 16:13

본문

2021. 11. 01

 

“Lee의 계약서에는 무슨 선발로 꼭 뛴다는 조항이 있냐?”

 

홀슈타인 킬 시절, 동료들이 뒤에서 나를 두고 이렇게 얘기했다. 경기에 잘 나서지 못하는 동료들이었다. 당시 나는 첫 유럽 진출이라 여러모로 몸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부상이 잦아 훈련을 많이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도 늘 선발로 나갔다. 감독님의 신임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참 무거웠다. 이런 시기 어린 시선도 감내하고 이겨내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받아들였다. 주전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마인츠에선 반대의 상황이다. 프로 데뷔 이후 가장 험난한 주전 경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아우크스부르크전 이후 최근 3경기에서 선발 기회를 마침내 잡았는데, 전에 없던 벅차오름을 느꼈다. 이 느낌을 간직하고, 내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통해 더 나은 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부 경쟁’이라는 주제를 선정했다. 꾸준한 선발 출전은 현재 나에게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긍정적이고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상기시키고 받아들여 향후 내부 경쟁을 잘 이겨 나가려 한다.

 

*

 

경쟁은 도처에 있다. 축구장 밖에서도 일어난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이 생각난다. 대학교 진학 후 나는 학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축구와 학업을 병행하며 학점 관리를 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 운동을 끝내 고된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갈 때는 정말이지 천근만근이었다. 잠이 내 발목을 잡곤 했다. 하지만 학교를 계속 다니기 위해서는 좋은 학점이 필요했고, 같은 수업을 듣는 축구 동기들보다 더 높은 학점을 받고 싶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성실한 출석체크다. 다른 동기들이 잠을 이기지 못하고 방에서 잠을 잘 때 나는 강의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한이 있더라도 출석체크는 반드시 했다. 그런 작은 노력이 쌓인 덕분에 학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동기들을 뒤로하고 나는 문제 없이 평화롭게 대학 생활을 마쳤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다른 학생과 공부로 겨룰 수는 없으니, 나만의 방법으로 평균 이상의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내가 경쟁을 대하는 태도다.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나만이 가진 능력, 나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전북현대와 킬에서 축구를 했다. 주전 자리를 대체로 놓치지 않았다. 전북의 최강희 감독님, 킬의 감독님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받았다. 그 믿음을 받을 수 있던 건, 내 능력에 대한 확신과 꾸준한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선발 출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든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계속 선발로 뛰면 안정감이 생길 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매 경기 받는 기분이었다. 훈련장에서 최상의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내가 선발로 뛰어야 하는 걸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경쟁자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육체적으로 준비가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훈련 외에도 식단 조절이 아주 중요하다. 원하는 목표를 위해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절제하고, 발전을 위해선 어떠한 고통도 인내했다. 꾸준한 선발 출전은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었다.

 

마인츠에서는 선발보단 교체로 뛰는 경기가 많다. 엔트리에 들었지만 경기를 뛰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끝나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마주한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동안 나의 주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이제는 한 번이라도 선발 명단에 들기를 바란다. 실낱같은 희망을 매일 붙잡으며 간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훈련장에 향한다. 다만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듯,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이 또한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좋은 기회라고. 또, 늘 선발로 뛰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던 백업 선수들의 심정도 공감할 수 있게 됐다. 잃는 것보단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마음가짐을 달리하니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주로 벤치에 앉는 선수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지켜봤다. 훈련장에서는 물론이고, 훈련장 밖에서도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감독이나 코치진에게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데 어색함이 없었다. 스스럼없이 자기 생각을 나눴다. 기회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어떤 방법을 써서든 만들어 보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나의 독일어 수준은 아직 그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꼭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축구선수로서 나를 어필하는 지점에선 더 그렇다. 난 훈련장에서 플레이와, 축구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감독님께 어필을 많이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얻은 기회가 바로 지난 아우크스부르크전 선발 출전이었다. 최근 우리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체로 뛴 도르트문트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아우크스부르크전을 준비하는 훈련 기간에 나의 모든 신경과 집중력을 끌어모았다. 여기서 날 어필하면 선발 기회가 올 거로 믿었다. 자체 경기에서 공격 장면이 나오면 공을 매끄럽게 잘 연결했고, 덤으로 골까지 넣었다. 수비 장면에선 상대를 끈질기게 쫓아다녔고, 볼 다툼 상황에선 쉽게 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이런 좋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코치님도 계속 칭찬을 해주시고 감독님도 전보다 나에게 더 많은 챌린지를 주문하셨다. 동료들도 내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많이 해줬다. 점점 희망이 생겼다. 코치님이 내게 “지난번 대표팀에 다녀와서는 힘들어 보였는데, 이번엔 오히려 활기가 더 생겼다”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대표팀 소집 때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신다). 신기하게도 그때의 시련이 내게 더 큰 힘을 줬다. 나를 진정으로 응원해주신 분들의 메시지를 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적 초반에 선발로 뛰었는데 왜 그렇게 감격스러웠냐고? 솔직히 그때는 운이 따라줬다. 선수 다수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아 어렵지 않게 기회가 생겼다. 이번엔 완전히 다르다. 훈련을 통해 처음으로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고 선발로 나섰다. 그러니 아우크스부르크전 선발 출전은 내게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이 됐다. 압박감과 부담이 따랐지만 또 언제 올 지 모르는 기회이니 이번만큼은 내가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마음껏 선보이며 즐기기로 했다. 그 이후 3경기 연속 선발 기회를 잡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평소 (구)자철이 형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데, 형은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정말 솔직히 말한다면 압박감이 가장 힘들었다”라고 했다. “경쟁에서 이겨 매 경기 경기장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경기에 출전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돌이켜보면 멘털이 유연하지 못했고, 그 한 가지에 너무 매달려 보낸 시간이 많아 여유를 찾을 틈이 없었다. 마음 편하게 축구를 하는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내 선택과 노력을 믿고 부담감을 내려놓았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장 혈기왕성하고 열정이 가득했던 나의 20대를 치열한 유럽에서 불같이 보냈다는 점에 감사하다. 후배들에게 힘들 때 더 감사하고 열정을 더 불태우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3경기 연속 선발은 곧 뒤로 밀려난 선수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그런 선수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는 눈길이 간다. 다행히 모두 프로다운 모습을 보인다. 경기에 나서기 전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준다. 경쟁 선수를 시기하거나 질투할 수는 있다. 당연한 감정이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질투를 잘못 표출하면 문제가 되지만, 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감정을 동기부여로 전환한다. 티는 안 내도 나의 경쟁자를 의식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아마 지금 내 뒤에 있는 선수들도 내색은 안 해도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을 거다. 그걸 잘 알기에 나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말했듯, 매 순간 최고의 모습을 유지해야 하니까. 더군다나 마인츠에는 유소년 출신 선수들이 많고 이미 팀에서 입지가 좋다. 마인츠뿐만 아니라 분데스리가 전반적으로 어리고 유능한 선수가 꽤 많다. 여긴 K리그처럼 22세 이하 의무 출전의 제도가 없는데도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편이다. 더군다나 팀의 유소년 출신이면 그 선수의 성장을 위해 물심양면 돕는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기에 당연히 좋은 환경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절대 안심하거나 안주할 수 없다. 내가 겨우 잡은 기회가 자칫하면 사라질 가능성이 너무나도 크니까.  

 

그렇다. 이래도 도전, 저래도 도전이다. 자철이 형 역시 “끝날 때까지 도전이었고 전투였다”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경쟁자보다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경기에 뛰기 위해 필요한 모습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도 하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만 하는 마음이 있어선 안 된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지치지 않는 단단한 정신력도 중요하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런 끝없는 경쟁이 향후 개인과 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앞서 킬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독자분들께서는 놀라셨을 수 있지만, 사실 다수의 선수가 겪는 흔한 일이기에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다만, 언젠가는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도록 경쟁자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경쟁자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받는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이 전쟁터에서 내가 반드시 도달하고 싶은 목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만의 칼을 간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