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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독일에선 훈련이 끝나고 승리의 셀카를 찍는다

--이재성 축구

by econo0706 2022. 9. 1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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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24

 

훈련이 끝났다.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대충 닦았다. 벤치에 앉아 꽉 조였던 축구화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때 동료 중 한 명이 잔디로 달려 나가며 외친다. “Komm Jungs, machen wir ein Foto! (이리와, 사진 한번 찍자!)” 그러자 다른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신나게 사진을 찍는다. 방금 미니게임에서 이긴 선수들끼리 기념 ‘셀카’를 남기는 중이다. 마치 방금 리그에서 승점 3점을 딴 듯 기뻐하며 말이다.

 

유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선수들의 SNS를 유심히 보면 훈련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가끔 올라오는데, 다 미니게임 승리를 기념하는 인증샷이다. 경기에서 이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뻐하냐고? 이곳에선 훈련도 경기와 같다. 그게 선수들의 마인드에 자리잡혀 있다. 훈련이든, 경기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기는 법을 습관화한다. 승리 인증샷도 그 습관화 중 일부다. 언젠가부터 나도 그 '셀카'에 동참하고 있다. 승리는 언제나 기쁘니까.

 

반대의 모습을 한 동료도 보인다. 자기 팀이 지거나, 훈련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공을 막 차면서 화를 내는 선수들도 있다. 역시 훈련을 경기처럼 대했을 때 나오는 모습이다. 이런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독일에서 매일매일 경기를 뛰는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홀슈타인 킬을 거쳐 마인츠에서 뛰며 보고 느낀 분데스리가의 훈련을 전한다. 

 

2018년 여름, 킬에 도착했다. 킬에서 첫 훈련을 앞두고 기대되면서도 크게 떨렸다. 유럽에서는 훈련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증이 컸다. 기대감을 한껏 품고 훈련에 돌입했다. 프로그램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매 훈련 다른 규칙이 존재했다. 선수들이 훈련 세션마다 계속 머리를 쓰고,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트레이닝시켰다. 그래야 훈련의 진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서동원 감독님 밑에서 비슷한 훈련을 했다. 정말 다양한 규칙과 함께 운동했다. 프로선수가 된 이후에는 규칙 대신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 했다. 독일에서 다시 그런 규칙과 함께 훈련하려니 몸과 머리를 동시에 써야 해 평소보다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옛날 생각도 새록새록 나면서 말이다. 첫날부터 팀을 나눠 경기했는데 선수들 모두가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이 정말 강하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도대체 실제 경기에선 어떻게 뛴다는 걸까.

 

나도 승부욕에서는 지지 않는데, 처음엔 그 승부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훈련에 규칙이 너무 많아 자주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복잡해 운동을 하면서도 잘 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독일어도 잘하지 못해 코치진이 주문하는 규칙을 눈치껏 따라 하기 바빴다. 언어가 훈련에서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세 번째 시즌인 작년에는 올레 베르너 감독님 밑에서 뛰었다. 베르너 감독님은 팀의 전술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경기장에서 좋은 결과로 많이 나와 기억에 남는다. 훈련 전 상대를 분석하고 비디오를 보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것인지 감독님이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게 선수들을 이해시킨 후, 훈련장에서 상대 포지션에 맞춰 콘을 세워두고 반복된 패턴 훈련을 진행했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모든 선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하고,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뛰었다. 그래서 지난 시즌을 치르는 동안 경기를 준비하는 데 늘 마음이 편안했고, 축구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축구에 정답은 없지만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만 알아도 상당히 도움 된다는 걸 체득했다.

 

보 스벤손 감독님은 내가 마인츠에 입단하기 전부터 내게 많은 기대감을 주셨다. 토마스 투헬, 위르겐 클롭 등 세계적인 감독과 함께 일한 이력이 있어 어떻게 팀 훈련을 이끌어 가실까 궁금증이 컸다. 훈련 패턴부터 신선했다. 토요일에 경기가 있다고 가정하면 월요일 오전 운동, 화요일 오전 운동, 수요일 오전 및 오후 운동, 목요일 휴식, 금요일 오후 운동 이렇게 진행이 된다. 목요일에 휴식을 갖는 게 인상적이었다. 놀랍기까지 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갑자기 쉬게 해준다고 하니 뜻밖의 소식이었다. 더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은 수요일까지 훈련 강도를 최고로 올린다. 이후 선수들이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 주신다. 처음 접하는 패턴이라 쉬는 게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한다. 감독님의 뜻에 따라 주말 경기를 최고의 컨디션으로 준비하기 위해 노력한다. 

 

훈련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집중력이다. 코치진이 준비를 완벽하게 해주는 덕분에 훈련이 시작되면 1분 1초도 낭비하는 시간 없이 단계적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훈련 내내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계속 코치를 해준다. 운동장에서만큼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고, 주말 경기를 잘 준비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거나, 훈련이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감독님은 바로 훈련을 중단하고 선수들을 모아 집중력을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훈련 시작 전에는 장난을 치고 놀다가도 훈련에 돌입하면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변한다. 훈련에 120% 몰입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엔 집중력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훈련이라 적응이 어려웠다. 워밍업이 끝난 후 본 훈련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공간을 한껏 좁혀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빠른 반응 속도로 전력을 다해야 하는 훈련이다. 처음에는 내 몸이 그런 훈련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몸의 반응도 느리고, 생각의 속도도 느려서 한참 애를 먹었다. 웬만한 지구력 훈련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인츠에서 진행되는 지구력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한 후에는 내 생각이 틀렸단 걸 깨달았다. 확실히 1부리그를 소화할 체력이 시즌 초반에는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훈련 패턴과 팀 규정, 선수들 사이에 녹아들며 조금씩 그 체력이 올라왔다. 무엇보다 식단에도 큰 신경을 썼다. 경기일이 다가올수록 훈련의 강도는 낮추고 컨디션에 신경을 많이 쓰기에 식단도 그때그때 달랐다. 주말에 경기가 있으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훈련의 강도가 정말 높다. 그 때문에 고단백질과 고탄수화물로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신경을 썼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고단백질보다는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 경기장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이마저도 애를 좀 먹었다. 내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골라서 먹고 싶지만 컨디션을 위해 참아야 하는 순간이 많다. 경기 전에는 호텔에서 파스타와 감자를 주로 먹는데 무슨 맛으로 먹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아무 맛도 안 난다. 그냥 경기를 뛰기 위해 먹는 거다. 경기가 없었다면 굳이 안 먹을 그런 맛.

 

우리 팀 훈련 전후의 풍경은 이렇다. 훈련 45분 전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에 도착한다. 그게 규정이다. 몸에 이상이 있는 선수들은 미리 와서 치료를 받고, 체육관에 모든 선수가 모이면 개인 운동을 통해 몸을 풀고 근력 운동을 하며 훈련을 준비한다. 강도 높은 훈련이 끝난 후에는 당연히 퇴근 시간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곧장 집으로 가는 선수는 거의 없다.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을 따로 불러 조언을 건네고, 특히 공격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에겐 특별 슈팅 훈련을 더 시킨다. 나머지 선수들도 마음 맞는 동료와 짝을 맞춰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더 연습하고, 체육관에 가서 피지컬 코치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한다. 훈련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선수는 클럽하우스로 들어가서 냉온욕을 하거나,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사우나를 하기도 한다. 치료가 필요한 선수는 피지오룸에서 치료를 받는다. 훈련 장면을 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장난도 치고, 다음에는 더 좋은 장면을 만들자는 약속도 한다. 앞서 말했듯 자기 훈련이 마음에 안 들면 막 화를 내는 선수도, 반대로 아이처럼 기뻐하며 기념샷을 찍는 선수도 있다. 

 

코치진도 선수들만큼 조직력이 좋다. 코치 3명, 피지컬 코치 3명, 비디오 분석을 담당하는 2명이 함께 모여 매일 훈련을 준비한다. 미팅을 통해 일주일 스케줄을 짜고, 매일 모든 훈련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감독님 단독 결정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하는 전문 스태프와 의견을 나누고 최선의 계획을 만들어내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준비한 훈련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감독님과 코치님이 상의해 빠르게 수정해 다시 안내해준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바라던 모습이 나올 때면 코치진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정말 좋아한다. 특히 세트피스에서 약속된 장면으로 골을 넣으면 감독님이 특히 기뻐하며 뿌듯해하신다. 감독님과 코치진이 얼마나 진심으로 매 훈련을 준비하는지 느껴진다. 그리고 선수들의 몸상 태를 매일 체크하며 훈련 강도를 정하는데, 선수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부상 예방에 특히 좋다. 미팅하면서도 선수들의 의견을 묻고, 선수들 역시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자연스레 질문하고 답을 얻는다. 이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궁금한 게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눈치가 보여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팀이 발전할 가능성도 더 크다는 것을, 이곳 독일에서 느꼈다. 

 

물론 한국 축구도 많은 이의 노력으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경기도 8:8 경기로 이뤄지고, 경기 중 감독님이 아이들에게 별도의 지시를 하면 안 되는 거로 알고 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몸소 느끼고 생각하도록 하는 게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경기 후 아이들이 자연스레 스스로 느낀 점을 감독님과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되지 않을까. 이런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유럽처럼 감독님과 선수들이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 믿는다. 

 

또 하나, 유럽 축구에서 벤치마킹하기 좋은 문화는 바로 유소년 육성이다. 우리 유소년 선수들은 프로팀으로 언제든 올라올 준비가 되어있다. 1군 선수들이 다치면 콜업이 되어 함께 훈련하고 때로는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있다면 1군 선수들과 훈련할 기회를 받는다. 대표팀 선수들이 A매치 기간에 빠지면, 그 인원만큼 유소년 선수들이 올라와 남은 프로 선수들의 파트너가 된다. 그렇게 기회를 받은 어린 선수들을 보면 긴장감과 비장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1군에서 함께 훈련하는 순간이 정말 소중할 거다. 프로 계약을 목표하는 선수들이기에 늘 절실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다. 그런 유소년 선수들을 보며 우리 선수들은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먼저 말도 걸고, 일부러 장난도 많이 친다. 감독, 코치진도 그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훈련하는 도중 칭찬과 격려, 조언을 많이 건넨다.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을 통해 어린 선수들은 정말로 성장한다.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해서 자기 플레이를 못 보여준다. 1군 훈련에 참여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진짜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며 프로 선수들에게는 일상인 이 훈련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성장의 장이라는 걸 느꼈다. 

 

그들의 성장은 내게도 큰 동기부여가 된다.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다. 유소년 선수들의 패기와 열정에 나 또한 축구에 대한 열정을 계속 키울 수 있고, 안주하지 않게 된다. 코치진이 아마 이런 이유로 유소년 선수들을 자주 콜업하는 게 아닐까. 그들의 발전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1군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K리그에서도 많은 유소년 선수에게 프로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직접 보고, 그와 함께 뛰고 부딪히면, 이보다 더 좋은 성장의 방식이 있을까.

 

*

 

처음 유럽에 왔을 때 나는 내 동료를 위해 뛰었다. 내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와 독일 동료들의 마인드셋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들은 나를 비롯한 동료를 위해 뛰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개인에게도, 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다. 나도 그들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뛰는 것보다, 나를 위해 뛰기. 그게 곧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도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축구에서 ‘이타적인 플레이’란 곧 이런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천천히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며 나의 마음가짐에 얼마나 큰 변화가 생겼는지 새삼 깨달았다. 또, 누구나 경험하지 못하는 유럽 축구를 내가 경험하고, 색다른 독일의 시스템을 배울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지금 이곳에서 쌓는 내공이 훗날 내게 어떤 식으로든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확신한다. 내게 남은 유럽에서의 시간을 더 치열하게 보내고, 신나게 즐겨야겠다. 하루하루 더 설레는 마음으로.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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