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5
축구선수의 일과는 복잡하지 않다. 훈련과 미팅, 식단 조절, 경기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하나 더. 우리가 운동 외에 신경써야할 일이 또 있다. 미디어 활동이다. 대중에게 보이는 직업인 만큼 미디어 활동의 중요성도 점점 커진다. 골을 넣거나 경기에서 주목을 받으면 자연스레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인터뷰는 이제 선수들에게 경기 후 쿨다운 운동처럼 중요한 일정이 됐다.
나는 고려대학교에서 뛸 때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인터뷰를 했다. 떨렸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나만의 인터뷰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다. 이번 칼럼을 통해서는 내가 경험한 인터뷰들 그리고 좋은 답변을 할 수 있는 팁도 공유하려 한다. 앞으로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이름을 알릴 어린 후배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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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인터뷰는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진행됐다. 교내 스포츠 잡지 ‘스포츠KU’의 인터뷰였다. 5개 부 학생 선수들을 취재하고 월간 잡지로 만들어 교내에 배포하는 동아리다. 대학 진학 후 한 번쯤은 그 잡지에 내 이야기가 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내가 가졌던 수많은 목표 중 하나였다. 그 목표는 1학년 남해에서 열린 춘계연맹전에서 이뤘다.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이야기에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 준다는 점이 좋았다. 기쁜 순간이었다.
프로 선수로서의 첫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2014년 전북현대에 입단해 브라질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그때 처음 인터뷰를 했다. 처음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됐다. 그래도 생각보다 편하게 내 마음가짐을 잘 전달했다. 매일 다이어리에 내 생각을 정리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인터뷰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나왔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프로가 되기 전에는 다른 선수들의 이야기만 접했는데 이제는 내 이야기가 네이버를 통해 노출되니 신기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게 하루는 기회이자 위기다”라고 말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한 대답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당시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국가대표가 되며 인터뷰 횟수는 더 많아졌다. 빡빡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는 게 힘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가대표로 소집됐을 때 하는 인터뷰는 더 긴장됐다. 클럽에서 할 때보다 많은 언론사가 취재를 오고, 엄청나게 많은 카메라가 내 앞에 있다. 내 표정 하나, 말 한마디가 큰 이슈로 번질 수 있어 더 조심스럽다. 긴장해서 말이 길어지곤 했는데, 방송은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잘렸다. 그런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짧고 명확하게 나의 소감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방송 인터뷰부터 잡지 인터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아쉬웠던 순간이 좀 있다. 경기를 마치고 경기 소감을 전할 때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머리로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말을 잘 못 하고 얼버무리곤 한다. 그 인터뷰 기사에는 내 생각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 팀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한 순간이 떠오르고 마침내 그 목표를 이뤄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정작 인터뷰에서는 우승해서 기쁘고 행복하다는 짧은 말만 하고 끝냈다. 경기 중 내 플레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순간도 종종 있다. 이게 가장 어렵다. 플레이는 그 순간 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건데 설명을 하라고 하면 참 쉽지 않다. 내가 설명하면서도 ‘과연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이런 아쉬움이 늘 마음에 남아 그런지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다.
이번에 처음 국가대표로 소집된 (김)건희의 경험담을 물었다. 건희는 신인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수원삼성 담당 기자분들이 오셨다. 언론사 3곳 정도와 인터뷰를 했다. 떨리지는 않았지만, 기자분들이나 구단 관계자분들이 자극적인 내용을 요구하셔서 조금 불편했다. 원래 성격대로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하면 스타가 될 수 없다고 약간의 꾸지람을 들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내 생각과는 다르게 해석되어 나간 기사 내용이 많이 신경 쓰였다. 앞으로 인터뷰를 어떻게 실수 없이 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래도 인터뷰가 나온 후 가족과 주변에서 좋아해 줘서 앞으로도 인터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자고 부푼 꿈을 꿨다.”
나도 건희처럼 인터뷰가 즐겁지 않던 순간이 있다. 내 상황에 맞지 않은 뜬금없는 질문을 받을 때는 정말 당황스럽다.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고… 나도 모르게 대답도 짧아지고, 표정도 어두워진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아진 걸 취재하는 분도 알아챘을 거다. 그래도 최대한 티는 안 내려고 한다. 그래도 기자분이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질문을 준비해오셨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자극적인 질문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땐 내 생각을 최대한 명확하게 얘기한다. 괜히 얼버무리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인터뷰가 기사로 나오더라. 어린 선수들이 이 점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
불편한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난 인터뷰를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질문을 통해 내가 나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평소 생각지 못했던 점을 내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하는데, 그걸 통해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알게 된다. 또, 내가 했던 생각과 말을 시간이 흐른 후에도 확인할 수 있다. 평소 다이어리를 꾸준히 적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자신을 되돌아볼 때,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할 때 예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을 보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어 좋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인터뷰의 장점 중 하나다.
최근에는 경기 후 악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았다. 솔직히 지금까지 악플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저 질문을 받고 처음으로 내가 악플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됐다. 지나친 악플을 받으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말 다행히도 나를 응원해주는 많은 팬분이 있어 용기를 냈고,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엔 악플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안 되기도 했다. 곧바로 소속팀에 돌아가 리그 경기와 내부 경쟁에 뛰어들어 자칫 우울해질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나는 인터뷰 스킬을 습득했다. 따로 인터뷰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미디어를 담당하는 관계자분에게 늘 조언을 구했다. 예상 질문을 묻고,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식으로 대답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미리 내 생각을 정리한 후 인터뷰 현장에 나갔다. 가족들도 내게 조언을 해준다. 내가 자주 쓰는 단어나 버릇 등을 알려주는데, 주로 “일단”과 “때문에”라는 단어였다. 생각할 때는 “어~”라고 하는 걸 발견했다. 이런 작은 버릇을 고치는 것도 더 매끄러운 대답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인터뷰를 하시는 분과 최대한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일찍 만나 담소를 나눈다. 어떤 질문을 준비하셨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미리 대답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다. 기자님과 나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좋아지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요청도 할 수 있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이기에 분위기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조심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먼저 내가 아닌 다른 선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다. 오해가 생길 수 있기에 쉽게 대답해선 안 된다. 양자택일을 시킬 때도 조심해야 한다. 선택은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보충 설명을 잘하는 게 좋다. 이 두 종류의 질문은 나중에 나를 곤란한 상황에 빠트리기도 하기에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스레 답변을 이어나가야 한다. 인터뷰 경험이 풍부한 (백)승호도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 주의를 기울인다. “초등학생 때 주말리그 성적이 좋아서 인터뷰를 처음 했다. 별생각은 없었다. 긴장하고 그런 것도 없고 그냥 느끼는 진심들을 이야기했다. 첫 인터뷰 기사가 나왔을 때도 난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게 좋은 건지, 나에게 어떤 효과가 오는 지도 몰랐다. 요즘은 신경을 많이 쓴다. 기자님들이 워낙 날카롭게 질문하고, 선수가 난처해지는 질문들도 많이 하기 때문에 항상 인터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최대한 조심하려 한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며 요즘 어린 선수들은 이런저런 대응 교육을 받는다. 건희도 소속 에이전시나 구단 관계자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은 이슈가 되는 게 좋으니 과감하게 자신 있는 멘트들을 하라고 배웠다. 반대로 네티즌이나 기자분들에게 먹잇감이 될 수 있는 발언은 조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늘 항상 내 진심을 숨김없이 말하고, 동시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단어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대답을 했다. 가끔 내가 생각해도 재미없는 인터뷰가 나오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터뷰로 인해 문제 된 적이 없었고, 팬분들 역시 내 진심을 알아주셔 소신껏 인터뷰하는 중이다.”
소신껏 인터뷰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크고 작은 팁을 전했지만, 결국 내가 느낀 점과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난 7년간 다양한 인터뷰를 경험하며 깨달았다. 또, 취재진과 하는 인터뷰이지만 결국 팬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이니 늘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대답해야 한다. 팬분들이 나의 인터뷰를 보며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 한 문장도 더 신경써서 말하게 된다. 나의 대답에 책임감을 가지는 태도도 중요하다.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후배 선수들이 이 점을 유념하며 인터뷰를 준비했으면 좋겠다.
이재성 / 분데스리가 마인츠 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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