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07.
1997년 KBL 출범 이래 수많은 외국선수들이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누군가는 아직도 팬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불명예스러운 퇴출을 당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한순간의 실수로 인한 ‘영구 제명’된 선수들도 존재한다.
그동안 KBL을 거쳐 간 수백명의 외국선수들 중 ‘영구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건 총 9명이다. 최대 5년까지 선수 자격을 상실한 선수들도 종종 있었지만 다시는 KBL에 들어올 수 없다고 못 박힌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쉽게도 과거 「민준구의 타임머신」에서 다뤘던 외국선수들 역시 대거 포함되어 있다.
▲ KBL 최초의 영구 제명 사례가 된 퍼비스 파스코
2007년 4월 12일은 KBL 역대 최초의 ‘영구 제명’ 사례가 탄생한 날이었다. 2006-2007시즌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 한창이던 이날, 파스코는 KTF(현 KT)의 거친 파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끝내 장영재와 최한철 심판을 밀친 뒤 퇴장하고 말았다.
코트 밖에선 천진난만하며 아이와 같았다고 한 파스코는 경기만 하게 되면 다혈질 성격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LG 관계자는 “심성이 나쁘거나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친구는 아니었다. 그저 상대의 집중 견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잘못된 방법으로 풀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 당시 식스맨급 국내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와 조기에 막아내지 못한 심판들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파스코는 3차전 직후 LG로부터 퇴단 통보를 받았으며 KBL의 영구 제명 및 벌금 500만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반면 파스코의 폭행(?)을 유도한 장영재는 1경기 출전 정지 및 50만원의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됐다.
▲ 대마초 연기와 함께 사라진 세 남자
대한민국에 오는 외국인 가운데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본래 살던 곳과의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 대마초를 마약류로 분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칫 잘못하다가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알면서도 하는 ‘상남자’도 있지만 말이다. 이는 KBL의 외국선수들도 마찬가지다.
2008-2009시즌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2월, KBL 팬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무릎 부상으로 교체될 것이라고 알려진 SK의 디엔젤로 콜린스가 대마초 흡연 혐의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콜린스만이 아니었다는 점. 그의 진술에 따라 ‘KBL 득점왕’ 테렌스 섀넌과 캘빈 워너마저 검찰 조사에 들어갔다.
콜린스는 2009년 1월 18일 강남의 한 호텔에서 섀넌, 워너와 함께 대마초를 흡연했다고 자백했으며 이에 따라 KBL은 영구 제명이라는 철퇴를 내렸다. 4월까지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던 섀넌과 워너는 끝내 4월 13일, 유죄 판정을 받으며 강제로 쫓겨나갔다. 그들 역시 영구 제명.
한때 KBL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세 남자의 운명은 비참했다. 다같이 피운 대마초 연기와 함께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 “Fxxk You!” 사고뭉치 아이반 존슨의 최후
기자에게 있어 KBL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아이반 존슨을 으뜸으로 둘 것이다. 단테 존스, 피트 마이클, 故안드레 에밋 등 화려하고 멋진 외국선수들도 기억이 나지만 존슨은 무자비했던 실력과 함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을 보는 재미가 있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너무 통통 튀었던 성격이 문제였다. 2009-2010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단순히 심판에게 항의하는 정도가 아닌 유재학 감독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보일 정도로 거침없었다. 하승진의 부상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KCC는 6차전에서 치욕적인 대패와 함께 백투백 우승의 꿈을 접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경기 후 존슨이 심판을 향해 다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는 것. 허재 감독이 재계약 의사를 밝힐 정도로 성공의 길이 보장됐던 그였지만 결국 500만원의 벌금과 영구 제명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존슨은 이후 필리핀 리그에서도 주먹질을 하거나 팔꿈치를 휘둘러 영구 제명되고 말았다.
▲ 무너진 신뢰, 처음과 끝이 달랐던 매튜스·터커·호그
프로 세계에 있어 의리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그저 제대로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돈과 그에 따른 명예, 즉 존경심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신뢰는 필요하다.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들인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아쉽게도 KBL은 외국선수들에게 수차례 신뢰를 잃어왔다. 첫 사례는 삼성의 브라이언 매튜스였다. 2009-2010시즌 전체 20순위로 지명된 매튜스는 2006년 호주 리그 시드니 킹스에서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뒤늦게 영구 제명됐다.
다음 사례는 최근 벌어졌다. 2015-2016시즌 전체 12순위로 동부(현 DB)에 지명된 다 터커가 계약 후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 이후 터커는 바레인과 아르헨티나에서 시즌을 보냈고 KBL은 이에 영구 제명을 선언했다.
이후 터커는 KBL 소속 선수가 아닌 요르단의 귀화선수로서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물론 패배의 쓴맛과 함께 돌아갔지만 말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오리온의 더스틴 호그다. 2017-2018시즌 전체 6순위로 지명된 호그는 오리온과의 계약을 파기한 후 터키 리그로 떠났다. KBL은 이에 대해 영구 제명으로 오리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이후 호그는 오리온에 복귀 의사를 전할 정도로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
같은 시기 키퍼 사익스 역시 같은 행보를 보였지만 5년 자격 정지를 받았다.
▲ ‘뜬금포’ 더스틴 호그 대신 온 도론 퍼킨스는 왜 떠났을까?
KBL의 영구 제명 리스트에 적힌 마지막 이름은 다소 뜬금없는 남자의 것이었다. 바로 호그의 대체 선수로 합류했던 퍼킨스. 그러나 퍼킨스는 입국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그 이유는 그저 햄스트링 부상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퍼킨스는 금지약물로 인해 KBL에 영구 제명된 상태다. 해외 리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가 다소 뜬금없는 이유로 KBL에서 뛰지 못한 것이다.
KBL 관계자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더 파악해봐야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메디컬 테스트에서 금지약물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종종 있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살던 곳과 대한민국의 마약류 관련 문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케이스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오리온은 호그, 퍼킨스마저 제대로 뛰지 못한 채 떠나면서 최악의 시작을 알렸다. 뒤늦게 드워릭 스펜서를 호출했으나 2017-2018시즌 최종 8위로 마무리해야 했다.
▲ 코로나19로 인해 KBL 떠난 이들은 어떻게 될까?
2019-2020시즌은 현재 코로나19로 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무관중 경기를 통해 잔여 일정을 소화하려 했지만 KCC 선수단이 투숙한 숙소에 확진자가 하루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끝내 사상 초유의 잠정 중단이라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외국선수들은 불안감을 숨길 수 없었고 결국 앨런 더햄, 보리스 사보비치, 바이런 멀린스가 중도 이탈하고 말았다.
더햄이 떠난 후 언론은 그를 영구 제명이라 보도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KBL 역시 선수 자격 정지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현재까지 어떤 재정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더햄과 사보비치, 멀린스는 아직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상황이며 다음 시즌에도 충분히 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양각색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KBL을 지키고 있는 외국선수들과 비교하며 비판하는 측과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해 떠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측으로 나뉘어 있다.
KBL 역시 앞서 언급한 세 선수들에 대해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재정위원회로 가는 정식 절차를 밟기 위해선 먼저 피해 구단들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KT는 물론 오리온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문제로 보는 만큼 현 상황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즌 재개가 불확실한 현재 외국선수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앞으로 남아 있는 외국선수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지켜보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지금 당장 더햄, 사보비치, 멀린스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도 의문이다. 하나, 중요한 건 우후죽순 늘어날 수 있는 외국선수 이탈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자료출처 :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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