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7 .31.
‘무등산 폭격기’는 1985년 해태에 입단, 데뷔한 선동열 현 삼성 감독의 별명이다. 무자비한 폭력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그곳 광주에서 에이스의 별명이 ‘폭격기’인 것은 아이러니같지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승엽의 별명은 스나이퍼에서 라이언킹으로, 그리고 국민타자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양준혁은 한때 ‘둘리’로 불린 적이 있었다. 윤학길은 황태자였고, 박정태는 악바리였다. 터미네이터 김상호는 좀 억지스러웠지만 삼성 김응용 사장의 별명 코끼리는 이백의 시구처럼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프로야구 초창기 별명을 만드는 일은 야구기자들의 몫이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최근작 ‘부의 미래’에서 “미래는 프로슈머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토플러에 따르면 프로슈머는 비화폐 경제체제의 생산자, 즉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무보수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에서 스스로 접시를 치우는 행위까지 모두 프로슈밍이다. 그리고 야구 또한 이들 ‘프로슈머’들이 만들어간다.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신나게 새로운 야구 담론들을 생산해 나간다. 바로 야구를 살찌우는 팬들이다.
더이상 선수들의 별명을 짓는 것은 야구 관계자들의 몫이 아니다. 팬들이 스스로 별명을 짓고 스타를 키워나간다. 한화 김인식 감독을 ‘재활의 신’으로 만든 것은 인터넷을 떠돈 만화 한 편이었다. 롯데 팬들이 사직구장에 내건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현수막은 21세기 롯데의 야구 역사를 단 8글자로 보여주는 통찰력을 자랑한다.
이렇다할 별명 없던 한화 이범호는 네티즌들이 그를 불러주었을 때 팬들에게 다가와 ‘꽃범호’가 되었다. 양배추를 머리에 얹었던 박명환은 ‘박배추’가 됐고 WBC에서 이치로의 엉덩이를 맞힌 배영수는 ‘배열사’가 됐다. ‘SK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에서 ‘김성근 야자 감독 선생님의 출석체크’ 또한 네티즌들의 촌철살인이다. 양준혁(양신)·손민한(민한신)·이종범(종범신)은 팬들에게 야구의 ‘삼신’(三神)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전년 대비 관중 48%가 늘었다고 희색인데 사실 팬들의 야구 참여는 훨씬 더 늘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야구 문자중계에 달리는 덧글은 하루 4경기 기준으로 지난해 약 2만건에서 올해 4만건으로 2배 이상 많아졌다. 이슈가 맞물리면 덧글은 7만건까지 늘어난다. 팬들이 참여가 늘어날수록, 이야기를 먹고 사는 야구는 더욱 살찐다.
팬들의 참여는 한마디 글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2년 말, LG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했을 때 삭발까지 했던 팬 김범수씨는 스스로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만든 아이스탯(www.istat.co.kr)에는 KBO조차 제공하지 않는 투수들의 땅볼-플라이볼 비율, 다른 모든 타자들과의 상대전적, 상대팀별 WHIP(이닝당 출루허용수)까지 정리돼있다. 이 놀라운 작업을 김씨는 혼자서 다 한다. 이제 팬(Fan)은 펜(Pen)보다 강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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