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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축탁축(淸蹴濁蹴)] 오히려 칼자루 쥔 콘테, '사퇴 선언'으로 레비에 칼끝 향하나

--최규섭 축구

by econo0706 2022. 10. 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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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2. 19.

 

중국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은 소하의 역량을 무척 높게 평가했다. 즉위 시 논공행상에서 소하를 으뜸가는 공신이라 하여 찬후로 봉한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유방이 한신과 장량보다 소하를 더 중시한 까닭은 그가 보인 탁월한 병참 능력이었다. 전방에서 걱정 없이 전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원활하게 군량을 지원한 소하가 없었더라면, 유방이 과연 평천하를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중국 후한 말기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격파함으로써 화북 지방의 패(覇)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조조가 원소군(軍)의 식량 기지인 오소를 야습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결정적 승기를 잡고 승자로 자리매김했다. 배고픈 군대는 괴멸할 수밖에 없는 ‘전쟁의 철칙’을 여실히 보여 준 실례다.

스포츠 세계는 전장(戰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함은 매한가지다. 그 맥락에서, 병참과 투자는 이음동의어라 할 만하다. 아무리 명장이나 전략가라 할지라도 후방의 지원이 끊긴다면 승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역시 구단의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명감독의 존재만으로 좋은 성적을 기약하기 어렵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연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격이라고 할까.

레비의 구두선에 화난 콘테, ‘사퇴 선언’ 폭탄을 터뜨릴지도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토트넘 지휘봉을 잡으며 그렸던 구상은 구단의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며 물거품처럼 스러질 고비에 처했다. 자연스레 콘테 감독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그 모양새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토트넘을 이끈 지 3개월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의 거취가 호사가의 구미를 돋운다. 경질이냐, 자진 사퇴냐, 유임이냐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18일(현지날짜) 현재, 토트넘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위(승점 36)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리그 3연패를 당하며 유럽 축구 꿈의 무대인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티켓 획득 하한선인 4위를 넘보는 데도 허덕이는 모습이다. 비록 3경기를 덜 치렀다고 해도 4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승점 43)와 격차가 7점이나 날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요즘처럼 사기가 밑바닥에 떨어진 형세라면 반전을 꿈꾸기에도 벅찬 간극이다.

콘테 감독은 2021-2022시즌 도중에 토트넘 사령탑에 앉았다. 지난해 11월 누누 산투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았다. 대니얼 레비 토트넘 회장이 시도한 심리 전술인 ‘격장술(激將術)’로 나타난 투영이었다.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단이 곧잘 전가의 보도인 양 단행하는 ‘충격요법’에 따라 해결사로 긴급 투입됐다.

‘극약 처방’은 주효하는 듯했다. 15라운드-17라운드-19라운드가 끝났을 때, 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한때(6라운드 종료) 두 자릿수(11위) 순위까지 추락했던 초반에 비하면 대단한 반등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EPL[첼시 1회(2016-2017시즌)]과 이탈리아 세리에 A[유벤투스 3회(2011-2012~2013-2014시즌), 인터 밀란 1회(2020-2021시즌)]를 평정했던 명장의 약발도 더는 듣지 않고 있다. 유럽을 호령했던 콘테 감독도 전력의 한계에 부딪혀 어쩔 수 없는 형세로 내몰리는 듯한 느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의 벽이 더욱 높아짐을 드러내는 토트넘이다. 구단의 적극적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 사령탑 교체는 한시적일 뿐임을 다시 한번 보였을 뿐이다. 레비 회장의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 약속, 곧 구두선에 콘테 감독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 레비 회장

 

레비 회장은 콘테 감독을 영입하며 팀 체질 개선을 약속했다. 원하는 선수를 모두 데려오겠다는 다분히 선심성 언약으로 콘테 감독의 마음을 잡았다.

그러나 공약(空約)이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허무맹랑한 말에 지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겉으로 내세운 구실은 ‘구단의 비전’이었다. 재능 있는 유망주를 육성해 비싼 몸값을 받고 팖으로써 구단 재정을 풍족하게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다.

토트넘이 지난 1월 이적시장에서 충원한 자원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는 레비 회장의 속내다. 유벤투스에서 데려온 로드리고 벤탄쿠르와 데얀 쿨루세브스키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이긴 하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팀에서 한몫할 즉시 전력감은 아니다. 오히려 탕기 은돔벨레를 비롯해 4명을 타팀으로 보내 손실을 본 전력 상태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콘테 감독이 “유망주 위주 영입이 토트넘의 비전이자 철학인가 보다.”라며 뼈 있는 한탄을 터뜨렸을까. 이어진 “경험이 풍부한 선수, 준비된 선수가 와야만 팀 전체 경험치도 올라가며 전력이 향상된다.”라는 말에서, 콘테 감독이 진정 강조하고 싶은 주장이 무엇인가가 엿보인다. “이런 팀으로 어떻게 UCL 티켓을 노릴 수 있단 말인가”라는 콘테 감독의 질타에,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까닭이다.

콘테 감독은 끝고 맺음이 분명하다. 사령탑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콘테 감독은 레비 회장에게 속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콘테 감독이 갈 길을 짐작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콘테 감독은 스스로 사령탑에서 내려오는 결단을 내릴 개연성이 높다. 콘테 감독은 그 길만이 레비 회장의 공수표 남발에 일격을 가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칼자루는 콘테 감독이 쥐고 있다. 지금 레비 회장이 쥔 건 칼날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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