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8. 21
전설 속의 영웅들은 대개 알에서 태어나고, 신표를 얻어 아버지를 찾고, 고난과 역경을 딛고 적을 무찌른 뒤,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 그리고 나서 영웅은 신화가 된다.
현대 사회의 스포츠는 일종의 신화다. 영웅이 되고 신화가 되어 전설로 남는 스타가 한둘이 아니다. 그를 전설로 만드는 것은 단지 그가 때린 결승 홈런이나, 그가 잡아 낸 삼진 아웃이 아니다. 신화와 전설은 반드시 이야기를 동반한다. 팬들은 그의 안타나 홈런, 삼진에 열광하는 게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 감동받고 전율한다.
일본야구는 그런 점에서 이야기에 무척 강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등번호만으로도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선수 시절 하라의 등번호는 8번. 스스로 밝힌 바 대로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영화 ‘에이트(8) 맨’에서 따온 번호다. 에이트 맨은 용감하고 씩씩하고 무엇보다 무적이었다. 하라의 8번과 무적 이미지는 요미우리와 잘 맞아 떨어졌다.
은퇴한 뒤 요미우리 코치가 됐을 때 하라는 등번호를 80번으로 정했다.
‘미스터 베이스볼’이라 불리는 일본 야구의 상징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게 된 하라는 “나를 완전히 지우고 나가시마 감독에게 몸바쳐 충성하겠다”는 뜻으로 자신의 등번호 8번 뒤에 ‘나를 지우는’ 0번을 붙였다. 팬들은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처음으로 요미우리 감독이 됐을 때 하라 감독은 등번호를 83번으로 바꿨다. 그동안 자신을 가르쳐 준 나가시마 감독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등번호 8번에, 나가시마의 영구결번 3번을 합친 번호였다.
2003년을 끝으로 물러났다가 2006년 다시 요미우리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하라는 “이제 하라 색깔의 야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요미우리가 빠진 위기 탈출 선언이자 개혁 선언이었다. 하라 감독은 자신의 8번에 또다시 자신의 8번을 붙여 등에 88번을 새겨 넣었다. 이전 요미우리 전성시대의 아련한 추억을 지우고 하라 스타일의 야구로 다시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결의였다.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선수 스스로의 몫이다.
오른손 중지 끝이 골절된 두산 안경현은 최악의 경우 평생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하게 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걸리는 수술 대신 2주짜리 재활을 택했다. 올해 우승을 위해서다. 포스트시즌이 오면 그의 이야기에 감동받은 팬들은 안타 한 개보다 그의 존재 자체를 더욱 기뻐할 게다.
KIA 이종범은 은퇴 압력을 받을 만큼 성적이 최악이다. 그러자 팬들이 그의 부활을 기원하는 광고를 한 스포츠 신문에 실었다. 지금껏 한국의 그 어떤 야구선수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다. 스토리의 뒷부분을 채우는 것은 이종범의 몫이다. 영웅이 돌아와 부활했을 때 신화는 완성되고 전설이 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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