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8. 28.
그때 타순은 이랬다.
1번 류중일, 2번 동봉철, 3번 양준혁, 4번 김성래, 5번 강기웅, 6번 이종두, 7번 정영규, 8번 김성현, 9번 김용국.
삼성팬이라면 술자리에서 툭하면 곱씹을, 어쩌면 다시 못올 화려한 타선이었다. 오른손 류중일-왼손 동봉철로 이어지는 테이블 세터진도 이상적이었고, ‘괴물 신인’이었던 3번 양준혁-부상에서 돌아온 홈런왕 4번 김성래로 연결되는 중심타선은 좌우로 나란히 서며 가공할 만한 화력을 뽐냈다. 타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천재’ 소리를 들었던 강기웅이 5번에 버티고 있었고, 이때다 싶으면 한방을 날리던 이종두가 6번이었다. 현 김응용 사장을 감독으로 영입하기 전, 삼성이 가장 우승에 가깝게 다가갔던 때였다.
저 타순은 1993년 한국시리즈 1차전의 삼성 타순이었다. 그때는 삼성 야구의 로망이었다.
87년 팀 타율 3할을 때릴 때도 있었지만 93년 삼성의 팀 방어율은 2.95였다. 당시 프로야구의 전체 방어율은 3.27. 87년(3.55) 이후 지금까지 다 따져도 가장 방어율이 낮았던,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가공할 타선은 팀 타율 2할7푼7리를 때렸다. 팀 장타율은 4할1푼3리였다.
당시 2번타자였던 동봉철은 “지금 되돌아보건대, 그때 야구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다. 단지 팀이 야구를 잘해서? 타율이 높아서? 손사래를 친 동봉철은 “부상도 있고 해서 내가 그때 6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2번타자인 내가 희생번트를 몇개 댔는지 아나”라고 되물었다.
한 경기에 평균 4.5타석.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 적어도 2경기에 1개꼴은 대지 않았을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동봉철의 표정이 환해졌다. 동봉철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난 희생번트를 겨우 1개만 댔다. 벤치에서 사인이 나오지 않았다. 류중일 형이 나가도 나는 내 스윙을 했다.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었고, 그때 우리 야구는 정말 재미있었다”고 했다. 최고의 투고타저 시즌에 나온 가장 화려했던 ‘빅 볼’의 야구. 당시 삼성의 사령탑은 우용득 감독이었다.
삼성은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승1무4패로 졌다. 그러나 박충식이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 15이닝을 혼자 던지고 무승부로 기록된 3차전은 여전히 한국시리즈 명승부 역사에 올라 있다. 그때 삼성이 보여줬던 재미있는 ‘빅 볼’을 이제는 볼 수 없는 걸까.
당시 삼성은 시즌내내 희생번트를 54개만 댔다. 올해 삼성은 27일까지 번트 74개를 기록 중이다. 1위 SK도 70개, 가장 적은 두산도 61개를 댔다. 물론 야구보는 재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때 그 삼성처럼, 2번타자가 시즌내내 번트 1개밖에 대지 않는, 화끈한 팀 하나 정도는 있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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