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5.
2002년 10월 14일 부산사직체육관은 금빛 물결로 가득했다.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야오밍, 후웨이동을 앞세운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1982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무려 20년 만에 얻은 영광의 순간은 아직도 수많은 농구 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 과정을 함께해 온 체육관은 부산사직체육관만이 아니다. 1라운드 및 2라운드 예선까지 선수들의 피와 땀이 흥건했던 금정실내체육관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금정실내체육관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건설된 실내체육관이다. 대한민국은 여기서 일본, 몽골과 1라운드 예선을 치렀고 북한, 홍콩, 카자흐스탄과 4강 티켓을 두고 2라운드 예선을 소화했다.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전승을 달렸던 대한민국의 기운이 금정실내체육관에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금정실내체육관에서의 최고의 명장면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맞대결이었다. 당시 북한은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스포츠 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즉 대한민국과 북한이 국내에서 치른 첫 맞대결이란 것이다. 당시 서장훈과 235cm의 리명훈의 라이벌 구도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101-85 승리로 마무리됐다.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금정실내체육관은 주인 없는 기회의 땅으로 남아 있었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프로농구단이 없었기 때문이다(1997년 KBL 출범 이후 기아가 부산을 연고지로 자리했지만 2000-2001시즌 이후 구단 운영을 하지 않으며 비어 있는 땅이 됐다). 하지만 여수 코리아텐더가 부산으로 연고를 옮기면서 금정실내체육관은 드디어 주인을 얻었다. 이후 KTF(현 KT)가 구단을 인수하며 완전체가 됐다.
기업 난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선수들은 새로운 기업, 새로운 체육관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코리아텐더 시절부터 함께 했었던 진경석 KB스타즈 코치는 “구단은 물론 선수들 모두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했다.
KTF는 2003-2004시즌부터 2005-2006시즌까지 금정실내체육관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2003-2004시즌 8위를 제외하면 2004-2005, 2005-2006시즌 모두 4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금정실내체육관은 성적과 무관하게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손규완 KGC인삼공사코치는 “내가 있었을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특별한 기억이 없다. 훈련할 때 이야기를 하면 메아리처럼 퍼지기도 한다. 또 접근성이 안 좋았기 때문에 어려모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김기만 SK 코치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체육관이 너무 넓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현재 잠실학생체육관이나 전주실내체육관 같이 작지만 집중도가 높은 곳은 팬들이 많이 찾는다. 예전 원주치악체육관도 그랬던 것 같다. 체육관이 큰 것도 좋을 수 있겠지만 선수들이나 팬들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큰 체육관에 사람이 적으면 더 없어 보인다. 첫 시즌에 부진했기에 팬들도 많이 오지 않으셨다(웃음)”라고 회상했다.
KTF가 2005-2006시즌 이후 부산사직체육관으로 이전한 것 역시 접근성의 문제였다. 노포동역(현 노포역)이 근처에 있었지만 이외의 교통수단이 부족했다. 결국 KTF는 부산시에 체육관 이전을 요구했고 끝내 부산사직체육관으로 이전하고 말았다.
한순간 ‘주인’을 잃은 금정실내체육관은 프로스포츠와 잠시 이별했다. 여러 스포츠 대회가 열렸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만한 메이저 스포츠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려 13년 만에 금정실내체육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그것도 사상 첫 부산을 연고로 한 여자프로농구단과 함께 말이다.
2019년 6월 24일 부산 롯데호텔에선 부산 BNK 썸의 공식 창단식이 개최됐다. 지난해 WKBL이 위탁 운영했던 OK저축은행을 BNK 캐피탈이 인수하는 형태로 신규 창단된 것이다. 홈 경기장은 당연히 금정실내체육관이었다. 오랜 시간 농구와 이별했었던 곳이었지만 외면받지 않았다.
오랜 시간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탓일까. 금정실내체육관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프로 경기가 열릴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정상호 BNK 사무국장은 “프로 경기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11억 정도의 투자를 통해 프로 스포츠에 어울리는 체육관으로 업그레이드했다”라고 밝혔다.
새로워진 금정실내체육관은 새 이름까지 하사받았다. 그 이름은 ‘스포원 BNK 센터’. 부산지방공단 스포원과 BNK의 합작품으로서 ‘스포원’과 ‘BNK 센터’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새롭게 탈바꿈한 ‘스포원 BNK 센터’는 지난 23일 BNK 썸과 KB스타즈의 경기를 시작으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부분들이 새로워지면서 무려 5,390명의 팬들을 불러모았다. 유영주 감독은 “농구대잔치 이후로 이렇게 많은 팬들을 처음 본다”라며 감동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친정에 발걸음한 진경석 코치 역시 남모를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KTF의 첫 홈 개막전 때 선수단이 정장을 입고 서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 지금은 코치의 신분으로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성대하게 치러진 ‘스포원 BNK 센터’의 홈 개막전은 성공적이었다. 하나원큐 2019-2020 여자프로농구 개막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며 부산 첫 여자프로농구단의 시작을 축하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스포원 BNK 센터’의 접근성 문제는 아직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다. BNK 썸은 매 경기마다 노포역을 기점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할 예정이지만 더 나은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 정상호 국장은 “주차장이 무료라는 장점이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불편할 수 있다. 셔틀버스 운행이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팬들이 더 편리하게 오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17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새로 탄생한 ‘스포원 BNK 센터’는 여자프로농구는 물론 한국농구 역사에 있어서 가장 뜻깊은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조금씩 불고 있는 부산 농구의 바람을 ‘태풍’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이다.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자료출처 :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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