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18
그는 백인들의 야구 영웅이었다. 사이영상을 7번이나 탔다. 그보다 더 많이 이 상을 탄 사람은 없다. 354승을 거뒀고,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두 번 꼈다. 한 경기 20탈삼진은 그를 상징하는 숫자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삼진을 뜻하는 K로 시작한다.
자신의 등번호 22번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연봉은 항상 22달러로 끝난다. 별명은 ‘로켓’이다. 한국나이 마흔 여섯에도 ‘로켓’ 같은 직구를 뿌렸다. 로저 클레멘스. 이름만 들어도 야구팬들은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로저 클레멘스(전 뉴욕 양키스)를 둘러싼 ‘신화’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깨졌다.
‘특검’ 때문이었다. 연방 정부로부터 금지약물 조사 압력을 받은 버드 셀리그 MLB커미셔너는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을 ‘특별검사’로 내세워 20개월간 조사를 벌였다. 14일 발표된 ‘미첼 보고서’에 클레멘스의 이름은 82번이나 언급됐다. 토론토 시절 트레이너였던 브라이언 맥나미는 “클레멘스가 원했고 4회 주사했다”고 말했다. “클레멘스가 ‘대단히 효과가 좋다’는 말도 했다”고도 증언했다. 클레멘스는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제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검과 의혹, 반박이 얽혀 메이저리그의 겨울은 시끄럽다. 그런데 이게 우리 대선과도 닮았다. ‘로켓’의 행동에서 대선 후보들이 읽힌다.
‘로켓’은 기호 2번을 닮았다.
BBK와 스테로이드를 두고 벌이는 공방이 시끄럽다. 브라이언 맥나미와 김경준씨도 닮았다. 맥나미는 증언시 형을 감해주는 ‘플리 바게닝’을 받았고 김씨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능력’과 ‘도덕성’ 사이의 줄타기도 비슷하다. 기막히게 시기 또한 같다. 로켓의 약물 투여가 의심되는 시점은 1998·2000·2001년. BBK 사건도 2000년을 두고 공방이 계속되는 중이다. 나란히 ‘특검’과 관계됐다. 설마 등번호 22번과 기호 2번도?
사실, 클레멘스는 기호 1번과도 닮았다. 클레멘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192승을 거뒀지만 뉴욕 양키스 선수로 남기 원했다. 보스턴에 씌워진 ‘저주’가 싫었다. 우승반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씌워진 ‘저주’를 떨치고 대통합신당을 차려 나선 1번과 같은 행보다.
기호 12번은 어떨까. 클레멘스는 2003년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4년 휴스턴에 복귀했다. 2005년이 끝나고도 은퇴하겠다고 했지만, 2006년 WBC를 뛴 뒤 다시 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2006년이 끝나고 진짜 은퇴한 줄 알았는데, 결국 2007 시즌 도중 뉴욕 양키스로 돌아왔다. 은퇴 번복 후 대권 3수에 도전한 12번이 딱이다.
지난 5월 양키스는 “우승을 위해 로켓을 영입했다”고 했다. 로켓의 우승 보장? ‘8번찍으면 팔자핀다’고 주장하는 후보와도 닮지 않았나.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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