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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 마뚜루] 거친 매너, 경기 포기 따위 추한 모습보다 ‘아름다운 꼴찌’를 보고 싶다

--홍윤표 야구

by econo0706 2022. 11. 1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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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7

 

지난 2011년에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의 첫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년)의 표제작인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마라톤에서 꼴찌로 달리고 있는 주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필자의 심리 변화를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 시원히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 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지는 것까지는 또 좋은데 지고 나서 구정물 같은 후문(後聞)에 귀를 적셔야 하는 고역까지 겪다보면 운동경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마저 식게 된다.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꼴찌주자에게 보낸 열심스런 박수는 더 깊이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다.’(발췌 인용)

 

▲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안현수가 빙판에 감격의 입맞춤을 하는 모습 /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인용이 길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고 있는 2014겨울철올림픽에서 몇몇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거친 태도와 지레 경기를 포기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 왔다. 박완서 선생의 지적이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한심스럽다.

쇼트트랙 선수들을 둘러싼 대한빙상연맹의 ‘구정물 같은’ 추문에다 올림픽 정신을 망각한, 오로지 메달 획득에만 목을 맨 선수들의 행위와 ‘금메달과 톱10 진입’에만 초점을 맞추는 몰지각한 일부 언론까지. 오죽했으면 안현수 사태와 관련, 일부 누리꾼들이 자정 능력을 상실한 빙상연맹을, 입에 담기 뭣하지만, ‘빙신연맹’이라고까지 비아냥댈까. 게다가 최고 권력자까지 나서서 질타를 해대는 마당이다. 글쎄,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힘들고 어려운데, 권력자가 그런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노릇이 민망스럽다. 

그동안 쇼트트랙은 한국의 메달밭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 환상이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특히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통해 보기 좋게 깨졌다. 한국 빙상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모든 종목에서 그러했지만, 한국이 가장 세다고 자부해온 쇼트트랙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체력에서 뒤진다는 인상을 줬다. 체력이 달리다보니 남녀 할 것 없이 레이스 운영능력, 기술, 정신력 모든 면에서 미흡함을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는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겨준 안현수의 노련하고도 지능적, 기술적인 레이스가 우리 선수들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 여자 쇼트트랙 1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심석희 /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한국 선수들은 뒷심이 달려 초반에 잘 달리고도 막판에 뒤집기를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레이스 과정에서 무리한 앞지르기를 시도하다가 원치 않은 신체 접촉이 일어나고, 예기치 못한 ‘페널티’를 당하는 일도 유난히 한국 선수들에게서 자주 일어났다.

예를 들자면, 남자 쇼트트랙 1000m 준결승에서 이한빈은 네덜란드의 크네흐트와 충돌, 실격 처리됐고, 신다운도 같은 종목 결승에서 무리한 앞지르기로 결국 페널티를 먹고 순위에 들지도 못했다. 여자 쇼트트랙 1500m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조해리가 미국의 에밀리 스캇을 건드리는 바람에 탈락했고, 같은 종목 결승에서 김아랑도 실격했다.   

한국 선수들은 여전히 메달에 집착한다. 당연하다. 4년간의 준비와 노력을 쏟아 부어 값진 메달을 일궈내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석연치 못하다면, 비록 금메달을 목에 걸어도 개운치가 않다. 하물며 경기 과정에서 ‘페널티’를 당해 그동안 기울인 모든 공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면, 당사자인 선수의 아픔과 비탄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럴지라도 ‘페널티’를 당한 선수가 지레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요, 스포츠 정신이라 할 것이다. 쇼트트랙의 한 선수가 경기 중 다른 선수와의 충돌로 궤도를 이탈한 다음에 보인 거친 행동과 경기를 포기한 것은 그야말로 ‘참가 자체가 영광스러운’ 올림픽 무대를 먹칠하는 행위이자 나라를 욕 먹이는 짓이었다.

누리꾼들이 ‘응원했는데 실망이다.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플레이’라고 질타한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찰나에 일어난 그 같은 일로 선수 자신이야 허탈하고 상대선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겠지만, 곧바로 일어나서 마지막까지 ‘힘껏 달리는 것’이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비록 졌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선수가 있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최선은,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다. 상식적이지만, 스포츠의 감동은 바로 그런데서 조용히 밀려오는 것이다.

포기, 기권은 최악이다. 아름다운 꼴찌를 보고 싶다. 

 

홍윤표 선임기자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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