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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실책은 이제 그만!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2. 11. 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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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2. 19

 

진부하고 식상한 얘기지만 야구는 확실히 흐름의 경기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주헌 기록원이 기억하는 그날 경기도 그랬다.

 

2002년 5월7일 화요일 대구구장. 삼성과 SK가 맞붙었다. 주중 3연전의 첫날이었는데 묘하게 나머지 3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남들 쉬는데 경기하는 것, 선수들도 마뜩치 않다. 게다가 습도는 90%나 됐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1회 말 삼성의 공격. 2사 뒤 3번 타자 이승엽의 타구가 2루수 최태원 옆으로 빠졌다. 이 기록원은 잠시 고민한 뒤 2루수 실책으로 기록했다. 그러자 이승엽이 1루에서 발끈했다. 표정만으로도 ‘이게 왜 실책이냐, 안타지’라는 게 역력했다. 박흥식 코치는 기록실을 보며 뭐라고 뭐라고 소리쳤다. 5년이 지난 뒤 이 기록원은 “사실, 조금 덜 엄격하게 했다면 안타를 줄 수도 있는 타구였다. 어쩌면 날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어쨌든 1회 말 실책 이후 경기의 흐름이 이상하게 변했다.

 

실책을 기록당한 최태원도, 실책으로 안타를 하나 날리게 된 이승엽도 썩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짓는 가운데,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은 SK 선발 제춘모의 초구를 때려 중월 2점 홈런을 터뜨렸다. 실책의 파급 효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회 말에는 선두 타자 김한수의 타구를 잡은 SK 유격수 김민재가 악송구를 저지르는 바람에 또다시 실책. 이게 빌미가 돼 또다시 2실점했다. 3회 말 볼넷과 폭투로 위기를 자초했고 2사 뒤 3루수 페르난데스의 어설픈 수비로 내야 안타를 허용해 또 실점. 5회에는 좌익수 양현석이 어이없이 뜬 공을 놓치는 바람에 점수를 내줬고, 6회에도 볼넷과 홈런, 2루타 2개, 안타가 쏟아진 가운데 3루수 페르난데스의 실책, 투수 김태한의 폭투 등이 겹치며 무려 5실점. 승부는 끝났다.

 

이런 경기의 마지막은 대개 공식처럼 굴러가게 마련이다. 12-3이 된 7회 말, 전타석에서 2점 홈런을 때린 진갑용이 타석에 들어서자 등 뒤로 공이 날아들었고, 재미없는 드라마처럼 뻔하게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몰려나왔다. 재개된 경기, 2사 만루에서 이승엽은 만루 홈런으로 첫 타석 때 안타가 실책으로 바뀐 분풀이를 했다.

 

15-3으로 삼성이 이겼지만 경기 내용은 엉망이었다. 실책은 실책을 낳았고, 쌓인 실책은 경기를 망쳤다. 만약 첫 실책이 안타로 처리됐다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을까.

 

프로야구 제8구단 센테니얼의 창단 과정을 보면 이날 경기가 떠오른다. 성급한 창단 발표는 실책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실책은 실책을 낳았다. 사실 첫 실책은 센테니얼이 아니었다. KBO가 첫 타구를 잘 처리했더라면,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공을 처리했더라면, 지금쯤 경기는 이미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재미 없는 드라마처럼, 이제 몸싸움이 남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제발 ‘폭탄선언’ 따위의 빈볼만은 던지지 말았으면. 가뜩이나 재미 없는 경기에 빈볼마저 날아들면 팬들은 짜증난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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