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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기록은 비키니소녀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2. 12. 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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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2. 26

 

미국의 경영학 교수 아론 레벤쉬타인은 “통계는 비키니와 같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암시적이지만, 숨기고 있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고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을 지낸 토비 하라는 이를 야구에 적용했다. “야구 기록은 비키니를 입은 소녀와 같다. 기록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는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기록을 찾고 뒤지고 곱씹으면 선수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물론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까지 알 수 있다(혹은 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야구 통계는 매력적이다. 야구 통계에 빠진 사람이라면 수많은 숫자로 구성된 통계를 보고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비키니 소녀를 보는 것과 같은 매력을 느낄 법하다.

 

타율은 가장 대표적인 야구 통계다. 3할이 넘는 숫자는 그 타자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훈장이다. 하지만 타율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안타와 2루타, 심지어 홈런이 같은 기준으로 평가된다. 더 큰 단점은 ‘언제’ 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산 타율이 3할2푼이나 되는 ‘타격의 달인’ 삼성 양준혁도 ‘언제 치냐’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점수차이가 많이 났을 때, 승부가 기운 경기 후반, 또는 주자가 없을 때 많이 친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영양가가 없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타율 3할2푼은 분명히 엄청난 숫자임에도 이것만으로는 ‘영양가 논쟁’을 끝낼 수 없다(지난 시즌 타격 2위 양준혁의 득점권 타율은 0.283, 규정타석 70% 이상 선수 중 전체 32위였다).

 

삼성 심정수는 올시즌 수비율이 100%였다. 실책이 단 1개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심정수를 뛰어난 외야수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수비율은 수비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통계지만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숨기고 있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리할 수 있는 공만 처리하면 실책은 없다. 이를 보완하는 통계인 레인지팩터(RF)에 따르면 심정수의 RF는 1.604. 리그 외야수 최하위권이다(심정수 밑으로 단 1명이 있는데 롯데 정수근이다).

 

프로야구 연봉감액제한 폐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구단들은 “올릴 때는 100~200% 올리면서 내릴 때는 40% 이하로 내릴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물론 타당한 주장이지만 ‘비키니 입은 소녀’는 안된다. 깎을 때 40%는 인상할 때 67%로 변신한다. 김동수가 제시받은 연봉감액분(3억→6000만원)은 80% 삭감이지만 이를 거꾸로 계산하면 무려 400%를 인상해야 도달하는 금액이다. 프로야구 26년 역사상 400% 인상은 2006년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한화 류현진(2000만→1억원)이 유일했다. 200% 초과 인상선수도 오승환, 권오준, 조용준까지 포함해 겨우 4명이었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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